‘불난’ 물가…‘기름붓는’ 환율
원달러 환율 970원…거침없는 고공행진
“원자재값 오르는 판에” 서민들 설상가상
“원자재값 오르는 판에” 서민들 설상가상
국제 원자재 값이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마저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상대적으로 위험 자산인 원화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11일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4.70원 급등한 97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8일 936.50원 이후 8거래일간 33.50원 급등하면서 2006년 4월3일(970.80원) 이후 23개월 만에 처음으로 970원대로 상승했다. 장중 한때 980.6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원-엔 환율 역시 100엔당 951.40원을 기록하면서 2005년 3월30일 954.40원 이후 3년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은 달러를 사려는 수요는 많고 원화 수요는 적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금융부실 사태 이후 외국인 주식 매도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주식을 판 돈을 달러로 바꿔 나가야 한다. 또 3~4월은 주식배당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주식배당을 받은 외국인들 역시 이 돈을 달러로 바꿔야 한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확대도 한 요소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갚아야 할 달러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환율 상승을 선호하는 강만수-최중경 기획재정부 장·차관이 기용된 것도 시장 심리를 ‘상승’ 쪽으로 돌리고 있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과장은 “악재들이 한꺼번에 겹쳤다”며 “역외 투기세력들이 상승 쪽에 베팅하면서 달러 ‘사자’에 나선 것도 환율 급등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다시 ‘네 자리(1000원 이상)’ 환율을 보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원-달러 환율은 2006년 1월3일 1005.40원을 마지막으로 1000원 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 문영선 국민은행 외환담당 차장은 “980원을 한번 뚫었기 때문에 추가 상승 시 1000원을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조선업체 등 수출이 견조하고 배당금처럼 일시적 요인도 있기 때문에 1000원대에 안착하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병찬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배당금 송금 등이 끝나면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며 “환율이 한없이 오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업체들에겐 호재다. 가격 경쟁력도 생기고 수익성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수출 확대, 수입 감소로 이어져 경상수지 적자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물가에는 직격탄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은의 거시경제모형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할 때 국내 소비자물가는 0.07%포인트 정도 상승한다. 한 한은 관계자는 “최근에는 환율 상승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도 약해진데다, 수출의 전체 경제 기여도도 낮아졌다”며 “반면 물가를 자극하는 효과는 확실해 결국 임금노동자와 서민들의 고통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지나친 환율 상승은 수출업체들이 사용하는 수입 원재료 비용을 올리고 물가 상승과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출업체들에게도 좋지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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