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장관 “정부가 맡아야…고정환율이 최선” 충격
한은·외환시장 ‘IMF·2004년 파동 재연될라’ 우려
전문가들 “정책 마찰 안 돼…개입 최소화가 추세”
한은·외환시장 ‘IMF·2004년 파동 재연될라’ 우려
전문가들 “정책 마찰 안 돼…개입 최소화가 추세”
‘강고집(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최틀러(최중경 기획재정부 차관)’가 돌아왔다.
강만수 장관이 앞으로 환율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한국은행과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재정부의 향후 환율정책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적정환율’을 지키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미로, 무리한 개입으로 정부가 큰 손실을 입었던 과거 행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율·통화정책을 놓고 재정부와 한은의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취임 전후로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어느 선진국도 환율에 대해서 시장 자율에 완전히 맡기지 않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발언은 이미 여러 차례 했고, 4일에는 “정부가 중앙은행보다 좀더 종합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기 때문에 정부가 환율정책을 맡아야 한다”며 한발 더 나갔다. “전문가들은 고정환율제가 최선이라고 한다”는 말까지 해서 외환시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도 정부는 외환시장에 참여해 환율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현행법상 환율정책은 재정부가 최종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한은은 협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강 장관이 새삼스럽게 이런 발언을 하는 배경에는 2004년 파동(최중경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이 환율을 무리하게 올리려다 2조원 가까운 손실을 입었던 일) 이후 수년 동안 환율정책의 주도권을 ‘한은’과 ‘시장’에 뺏겼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은은 그동안 ‘기본적으로 환율은 시장에 맡기되 급등락을 방지하는 정도만 개입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고 재정부도 이를 수용해 왔다.
한 재정부 관계자는 5일 “강 장관의 기본 생각은 ‘어떻게 시장에만 맡기나. 그럼 정책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냐’라는 것”이라며 “최근 시장에서 한은이 환율정책을 다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일단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한은 관계자는 “2005년 우리나라가 에스앤피(S&P)에서 1등급을 받은 주요 이유도 유연한 환율정책이었다”며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개입하고 싶으면 재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을 가지고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시장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강-최 라인이 돌아온 이상 원-달러 환율이 크게 떨어지기는 어렵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지난주 역외세력들이 달러를 매도했다가 이번주 매수로 돌아서는 데 강-최 변수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과장은 “정부도 시장플레이어 중 하나로 개입할 수 있지만, 정부가 환율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도 이날 낸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은 외환시장 개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며 “개입은 경제위기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좀체 소신을 굽히지 않는 두 사람의 성향으로 볼 때 이런 조언들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적극적 시장 개입을 위해서는 실탄(달러를 사들일 돈) 조달에 한은의 절대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 또 ‘강만수식 환율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한은의 금리정책도 호응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은과의 마찰도 현실화할 수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강 장관이 자꾸 이런 발언을 흘리는 것은 결국 금리 인하까지 겨냥한 포석 아니냐”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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