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회의를 시작하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금리인하 가능성 비친 한은
한국은행의 국내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미국발 금융부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악영향에서 국내 경제가 결국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 인식은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가 현재의 ‘중립’에서 ‘완화’(금리인하) 쪽으로 더 가까워지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물가상승률 또한 여전히 높은 상태여서 한은이 금리인하를 단행하기까지는 좀더 진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통화위원회는 콜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향후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날 이성태 한은 총재의 발언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경제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있어 우리 수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까지만 해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불확실한 점이 많은 상황”이라고만 말했다. 반면 이 총재는 이날 물가에 대해서는 “상승률이 하반기로 가면서 낮아질 것”이라고 말해 상대적으로 경계감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경기 하강 위험만 생각한다면 한은은 곧 금리인하를 단행해야 한다. 하지만 한은이 당장 금리인하에 나서기에는 최근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9%에 이르렀고 2월에는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하반기에 물가가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해도 물가상승률이 4%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자칫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킬 수 있다.
이 총재도 “물가 상승이 기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돼 높은 물가가 고착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경기가 악화돼 고용 및 가계소득에 짐이 되는 상황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취해야 하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경기 걱정은 커지는데 물가도 외면할 수 없는 한은의 고민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정용택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전보다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하게는 아직 ‘고민 중’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이 일단 ‘경기는 안 좋아지고 물가는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이상 금리인하는 기정사실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미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는 ‘완화’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남은 것은 시기뿐”이라며 “4월에는 금리인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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