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은총재 통화정책 관련 주요 발언
이성태 총재 ‘물가’서 ‘경기’로 초점 이동…미국과 큰 금리차이도 부담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갈수록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더라.”
지난 18일 한국은행 주최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이성태 한은 총재가 참석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총재는 지난 5∼9일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회의에 참석한 뒤 귀국했다. 지난해 상반기에서 하반기, 올해 초로 넘어오면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말미암은 세계경제 악영향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발언이다.
‘자신감을 잃고 있는 총재들’에는 이 총재 자신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한은의 통화정책 방점이 지난해까지의 ‘물가와 유동성’에서 ‘경기’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이는 통화정책 기조가 ‘긴축’(금리 인상)에서 ‘완화’(금리 인하)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 경기 걱정 커져=최근 한은의 태도 변화는 지난 10일 금통위 직후 이 총재의 기자간담회에서 잘 드러났다. 지난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금리는 상당 기간 높은 수준으로 간다”며 단호하게 긴축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간담회에서는 “금리 하락 압력이 있을 수 있다”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날 이 총재 발언 뒤 채권시장에는 금리하락세에 속도가 붙었다. 한 채권 딜러는 “시장에서는 한은이 ‘적어도 올해 콜금리 인상은 없다’는 시그널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6.11%까지 올라갔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1일 현재 5.34%까지 하락한 상태다.
이런 변화는 국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한은이 지난해 말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4.7%로 전망했을 때 전제한 미국 경제 성장률은 1.8%였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침체’로 가서 성장률이 1% 안팎까지 떨어진다면 국내도 4.5%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 총재는 18일 금융협의회에서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앞으로 경제성장의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 내외 금리 차·새 정부와 공조 부담=다른 나라와의 금리 차이가 자꾸 커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오는 30일 기준금리를 현재 4.25%에서 0.5% 이상 내리면 한―미 금리 차이는 1.25% 이상 벌어지게 된다. 18일 금융협의회 참석자는 “한은이 내외 금리 차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내외 금리 차이가 커지게 되면 국외 투기 세력이 국내 채권을 대거 매수하는 등 부작용이 생겨나게 된다. 이달 들어 외국인의 채권 순매수는 지난 18일 현재 2조2491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올해 6%, 재임기간 평균 7%’라는 높은 성장률을 목표로 내세우면서, 자꾸 “한은도 정부 목표에 협조해야 한다”는 발언을 흘리는 것도 금리 인하 쪽으로 은근히 압력을 넣고 있는 셈이다.
■ 물가가 걸림돌이긴 한데…=물가가 한은의 목표인 3.5%를 뛰어넘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통화정책 기조를 선회하는 데 마지막 걸림돌이긴 하다. 하지만 이 총재는 지난 금통위에서 “물가는 하반기에 들어가면 상승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물가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부터 과잉유동성→물가→경기로 방점이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물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어렵지만 여름 이후 물가 압력이 줄어들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이에 따라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관측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물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어렵지만 여름 이후 물가 압력이 줄어들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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