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다던 은행들 대출 되레 늘렸다
11월 기업대출 10조 늘어 사상최대
금리 계속 올라 대출자들 이자 시름
연체율 늘면 은행도 ‘제발등 찍은 격’
금리 계속 올라 대출자들 이자 시름
연체율 늘면 은행도 ‘제발등 찍은 격’
지난달 자금시장 경색으로 금리가 급등하는 와중에도 은행들의 대출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 돈은 증권사로 빠져나가는데 은행들이 대출 경쟁을 멈추지 않으면서 결국 기업과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은행에도 부메랑으로 돌아가 건전성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은행들 대출 증가 추이=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은행의 기업대출(원화)은 10조1752억원이 늘어나 200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대출이 8조6195억원으로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지난달은 한때 국내 채권시장이 패닉에 빠지고 한은이 긴급 자금지원에 나설 정도로 금리가 급등하고 자금시장이 혼란스러울 때다. 은행들은 당시 겉으로는 자금 부족을 호소하며 당국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대출을 마구잡이로 늘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중 유동성도 증가세가 줄지 않고 있다. 10월 말 광의유동성(L) 잔액은 2016조3천억원으로 9월 말보다 23조9천억원이 늘어나 2천조원을 넘어섰다. 양도성예금증서(CD)·은행채 발행과 주식형펀드 증가가 주원인이다. 한은은 11월에도 유동성 증가율이 10월보다 소폭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금리 급등 지속=은행들의 행태가 변하지 않으면 금리 상승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은 계속되는데 대출은 크게 늘려야 하니 결국 시디와 은행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 채권 펀드 매니저는 “12월 들어서도 시디·은행채 발행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며 “은행들이 높은 금리에 시디나 은행채를 발행하면서 다른 회사채나 국고채 금리도 덩달아 뛰고 있다”고 말했다.
6일 시디금리는 17일 연속 상승하며 5.67%로 올라섰고, 3년 만기 은행채(AAA 등급) 금리는 6.65%까지 올라간 상태다. 이에 따라 이날 현재 시중은행들의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신한은행 6.63~8.03%, 우리은행 6.53~8.03%, 하나은행 6.96~7.66%, 국민은행 6.24~7.84%로 8%대를 넘어서거나 8%대에 바짝 다가섰다. 고정금리부 대출 역시 은행채나 국고채에 연동하기 때문에 우리은행 3년짜리가 7.56~9.06%, 신한은행 3년이 7.55~8.95% 등으로 9%대에 육박하고 있다. 빚을 내 집을 산 가계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들의 시름이 모두 깊어질 수밖에 없다.
■ 은행들 언제까지=은행들이 대출을 줄이지 않는 이유는 ‘무조건 규모가 커야 한다’는 성장지상주의와 예대마진이라는 가장 손쉬운 수익구조에 의존하는 습성 때문이다. 은행으로서는 조달금리가 올라가도 대출금리에 그대로 전가하기 때문에 당장은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광준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장은 “현재 상황을 보면 자산관리를 신중하게 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며 “과점 상태의 은행들이 한번 시장점유율을 뺏기면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운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연체율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회사채 애널리스트는 “건설경기가 안좋아지고 금리가 올라가고 있어, 조달구조와 자산의 질이라는 양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은행들이 성장 지향을 버리고 자기 점검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드사태 때도 보았듯이 연체율이 올라갈 때는 이미 문제가 곪아터진 뒤”라고 덧붙였다.
한 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11월 말 기준으로 연간 영업실적이 잡히기 때문에 지난달에는 영업을 적극적으로 했을 것”이라며 “12월부터는 조금 더 신중한 태도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준 국장도 “11월 말 이후 은행들의 대출태도가 조금 바뀌고 있으니 지켜보자”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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