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어난 정전사고로 일부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 선 가운데 직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뒤쪽 하늘에 보이는 검은 연기는 정전이 일어났을 때 가동하는 자체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용인/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대한민국 대표 기업을 자부하던 삼성그룹이 연이은 악재로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내내 반도체 부문의 실적 부진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기흥사업장의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삼성으로선 성장 정체를 극복하고자 그룹 차원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터에 또다른 암초를 만난 셈이다.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은 3일 “그룹 전체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악재가 터져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반도체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액을 최대 500억원으로 추산했다. 길어도 이틀 안에 재가동하는 것을 전제로 잡은 수치다. 복구가 늦어지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정작 삼성이 걱정하는 것은 피해 규모보다 완벽을 추구해온 기업의 이미지 실추다. 이번 사고로 삼성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반도체공장뿐 아니라 ‘관리의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삼성은 올 들어 이건희 회장이 ‘올인’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실패했고, 편법 상속 의혹을 다툰 삼성에버랜드 항소심에선 유죄 판결을 받았다. 5년여 만에 가장 나쁜 경영 실적을 내면서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관리 경영’을 원점에서 되돌아봐야 한다는 안팎의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이날 사고가 나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황창규 반도체 총괄사장 등 경영진들은 현장으로 총출동해 비상대책 회의를 여는 등 사태 수습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삼성이 이번 사고를 얼마나 중대한 상황으로 여기는지 방증하는 것이다. 윤 부회장은 가동 중단된 생산라인을 둘러본 뒤 “조속한 시일 안에 복구가 가능하다”며 “정상화되면 생산라인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번 사태를 얼른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후유증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 주변에선 일련의 사태로 느슨해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문책성 인사가 이어질 것으로 점치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 삼성은 이번 사고를 빌미로 자칫 그룹 전체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의 한 차장급 직원은 “사업·인력 재배치로 직원들 분위기가 흉흉한데 이번 사고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어렵사리 추슬려온 분위기가 흐트러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