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정문 공개] ⑥ 투자자-국가 소송제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협정문 공개 결과, 그동안의 의혹을 잠재우기에 여전히 미흡했다. 또 정부가 밝히지 않았던 문제점도 추가로 드러났다.
우리의 조세정책도 예외적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의 제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은 물론, 제소에 들어가기 전 우리 재정경제부와 미국의 재무부가 먼저 협의를 하도록 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국 협상단의 한 과장은 “문제가 생기면 중재로 가기 전에 조세 당국끼리 거를 수 있는 ‘필터링’ 장치”라고 해명했지만, 미국 투자자로서는 미국 정부를 뒷배경 삼아 까다로운 제소 절차 대신 간단하게 자기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게 됐다.
협정문은 정부·공기업이 민간 투자자와 맺는 ‘투자 계약’도 제소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송기호 통상 전문 변호사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경우 투자 계약은 제소 대상이 아니었다”며 “국·공유지를 민간에 임대하는 등 한쪽 당사자가 국가일 뿐 순수하게 민사적인 문제로서 민사 재판 대상인 ‘투자 계약’을 소송 대상에 포함시켜 국가의 행위가 더욱 제약받게 됐다”고 말했다.
한-칠레 등 이전 자유무역협정에서는 모두 ‘공공질서, 미풍양속, 보건위생, 환경과 관련해 정부가 투자 협정에 위배되는 조처를 취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일반적 예외’ 조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고, 미-콜롬비아 협정문 수준으로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미국 요구가 관철됐다. ‘공공질서 유지 목적에만 한정하고 그나마 사회 기본 이익에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에만 외국인 투자자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안정화 정책 등 공공 복리 목적의 조처는 수용으로 보지 않는다”며 부동산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위험은 전혀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하지만 여기엔 “일련의 조처가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춰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경우를 제외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어,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도시 계획과 이용 등에 관한 정부 정책을 이유로 소송을 걸 수 있는 길을 확실하게 열어줬다는 사실이다. 서순탁 경실련 도시주택위원장은 “부동산 안정화 대책 범위를 넘는 조처들, 예를 들어 수도권 과밀 억제 등을 위한 지구·구역 설정 같은 부동산 정책들은 휘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창석 최우성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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