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한국서 할 만한 일 아니다”
삼성 “포기가 아니라 공장 국외 배치 뜻”
삼성 “포기가 아니라 공장 국외 배치 뜻”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또 화두를 던졌다.
이 회장은 9일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가전 사업은 “한국에서 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07 투명사회협약 보고대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이 회장은 “ (생활가전은) 내수는 하겠지만 수출은 아니다”며 “개도국에 넘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생활가전 사업은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5% 안팎(2006년 3조900억원)을 차지하는데, 사업부문 중 유일하게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초 조직개편 때는 ‘총괄’ 사업부문에서 ‘사업부’로 축소·재편됐다.
윤종용 부회장 직할체제로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3대 주력상품에 집중하겠다는 게 삼성의 계획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이날 발언으로, 삼성이 생활가전 사업을 대폭 축소하거나, 장기적으로는 아예 접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가전사업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적극 해명했다. 이 회장의 발언 진의는, 소니와 나이키처럼 본사(국내)는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등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가고, 생산기지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국외)지역으로 재배치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세계 가전업계가 디지털 기술과 융합하는 추세이고 가전제품이 해외시장 확대에 필수적인 상황에서 ‘전면 철수’ 급격한 변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기도 하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노승만 상무는 “현재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광주 공장은 프리미어 제품(테스트 베드용) 및 내수용 생산에 주력하고, 수출은 전적으로 현지생산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반도체·휴대전화 등 주력업종의 수익률 하락 추세가 “심각한 문제”라며, “삼성전자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에는 아주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올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고 있다”며 제기한 이른바 ‘샌드위치론’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이달 말 국외출장에 나서 독일·프랑스 등 유럽 현지법인을 둘러본 뒤 다음달 23~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난항을 겪고 있는 차기 회장 선출과 관련해 “다음주쯤 윤곽이 잡힐 것”이라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여전히 유력한 후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전경련 회장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며,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삼성이 조석래(72) 회장을 반대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70대 불가론은 말이 안되며,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경련은 지난달 총회에서 조 회장을 합의 추대하려 했으나,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이 ‘70대 회장 불가론’을 들어 반대하는 바람에 회장 선출이 무산됐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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