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4차협상 첫날 난항…섬유 10년내 관세철폐 ‘생색’
북핵 내세워 개성공단제품 한국산 불인정 더 완강해져
북핵 내세워 개성공단제품 한국산 불인정 더 완강해져
23일 제주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차 협상 첫날 공산품 분야에서 대폭 개방을 요구하는 우리 쪽과 더는 양보할 수 없다는 미국 의견이 부딪히면서 상품무역분과 협상이 중단됐다. 하지만 다른 분과는 예정대로 협상이 진행됐으며, 상품분과도 소규모 접촉을 계속하는 등 4차 협상의 전면 파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개성공단 문제는 북한 핵실험 여파로 난항을 겪었다.
한국, “자동차, 자동차부품 양보 더 해야” =미국 쪽은 이날 오전 공산품, 섬유, 농산물 등 세 분야의 수정양허안을 우리쪽에 제시했다. 웬디 커틀러 미국 협상단 수석대표는 “이는 모두 24억3천만달러 규모의 물품에 대한 관세철폐 이행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내용”이라고 생색을 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별 알맹이가 없다.
김종훈 우리 쪽 수석대표는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90여 품목들을 기타품목(관세철폐 예외)에서 10년내 관세철폐로 앞당겼고, 자동차는 여전히 기타품목으로 남겨놓았다”며 “우리 대미 수출액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자동차 관련 제품을 제자리에 놓고는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섬유는 우리의 대미수출 25억달러 중 13억달러에 해당하는 품목을 기타에서 10년으로 앞당겼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미국 쪽은 나름대로 개선노력을 보였다고 주장하지만 10년은 공산품 관세철폐 기간 중 가장 긴 기간”이라며 “우리는 더욱 대폭적이고 내실있는 개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쪽이 추가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상품분과 협상이 오후에 열리지 못했다. 우리 협상단이 회의 중단을 감수하면서까지 강경한 태도를 견지한 것은 상품 쪽에서 확실하게 과실을 따내지 못하면 협상 전체의 명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쪽 대표와 분과장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접촉은 이날 오후에 계속돼 대화창구를 열어놓았다. 24일에도 공식회의 재개는 불투명하지만 소규모 접촉은 계속하겠다는 것이 협상단 태도다.
양국 대표, “핵실험으로 개성공단 더 어려워져”=북핵 위기로 이번 협상에서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우리 쪽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커틀러 대표는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하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미국 쪽은 이전에도 개성공단 문제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더욱 강경해진 것이다. 김종훈 대표도 “개성공단 문제는 경제 외적인 요인들이 고려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며 “북한의 핵실험 발표로 제반 여건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 동향과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북핵사태가 터지기 전인 1~3차 협상 때도 ‘개성공단’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역외가공’이라는 우회적 표현만을 쓸 정도로 이 문제에 수세적 태도였다. 사실상 개성공단이 물건너 갔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제주/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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