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판론자들이 제기해온 이른바 FTA 협상 개시의 '4대 선결조건'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 자체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 의회가 보고서에서 'FTA 협상 개시 조건으로 한국이 4대 선결조건을 수용했다'고 밝힌 것도 미 의회의 아전인수격 견해로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다.
FTA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협상 개시전에 미국측이 제기해온 이들 주요 통상현안 요구를 수용, 협상력을 훼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부는 4대 선결조건에 대해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 스스로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4대 선결조건이란.
4대 선결 조건은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건강보험 약가 현행 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적용 유예 등을 말한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1월 신년 연설을 통해 한미 FTA 추진 의사를 공식화하고 양국이 협상개시를 공식 선언한이후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한미FTA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등 한미FTA 반대론자들이 비판 근거의 하나로 제시해온 문제이다.
비판론자들은 작년 2월 미국 행정부가 의회조사국(CRS)에 제출한 '한미 관계-FTA 협력.마찰.전망' 보고서 등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이 보고서는 건강보험 약가 문제와 관련, 지난해 포트먼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의약품 문제의 진전이 없다면 FTA 협상은 개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실과 "같은해 10월 한국 정부가 어떤 새로운 약가 정책도 도입되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해 동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역시 지난해 포트먼 대표가 FTA 협상을 개시하기전 한국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야 할 4개 분야의 하나로 자동차를 포함시켰다는 설명도 있고 미국 통상 담당자들에게는 김대중 정부이후 한국 정부의 FTA 추진 역량의 상징이 된 스크린쿼터 감축에 대한 발표가 쇠고기 금수 해제 발표 하루전에 있었다고 적시했다.
◇정부 "선결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들 통상 현안들에 대한 대처가 선결조건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이들 4가지 사안은 양국간 오랜 현안으로 통상마찰 해소 등을 위해 사안별로 대처한 것이며 스크린 쿼터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안들은 아직도 해결돼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즉, 재정경제부나 외교통상부는 특별히 양보했다기 보다는 양국간 숙제를 매듭짓고, 한미 FTA를 가속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진동수 재경부 차관은 이와 관련, "정부는 원칙을 갖고 통상현안별로 대응한 것"이라고 최근 반박하기도 했다.
김성진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도 19일 언론브리핑에서 "4대 통상현안은 최근 2∼3년간 우리나라와 미국간 통상에서 이슈가 됐던 사안들"이라며 "FTA 협상을 보다 순탄하게 진행하기 위해 이 현안들에 대해 사전에 입장을 정리한 것이지 결코 FTA 협상의 선결조건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논란 빌미 제공
작년 9월 대외경제위원회 문건에는 선결조건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진 차관은 "기본적으로 4대 선결이라는 표현은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는 미숙함을 인정한 셈이다.
양국 정부가 지난 2월 2일 미국에서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하기 하루전에 공청회를 개최한 점 등도 절차적인 측면에서 비판을 자초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부 고위급 정부 관료들조차 공청회를 협상 개시 선언 하루전에 여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한 관료는 "한-칠레 FTA 사례를 볼때 반발이 있을게 뻔해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정부가 보인 허점들이 협상에 간단치않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진행된 2차 협상 때 미국이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점에 비춰볼 때 선결 조건에 대한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대해 "미국은 FTA 협상 출범뒤 제도를 바꾸는데 대해 일반적인 협상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반발한 것"이라며 "과거 통상현안회의 때 약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측이 미국에 '신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지 약속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수현 기자 eva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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