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요구 그대로 수용땐 변칙상속 등 되레 늘 수도”
최근 재계가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너무 높아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오히려 상속세 인하가 조세 형평성을 해치고 재벌체제의 부정적 측면을 고착화하는 등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상속세 인하, 누가 혜택받나?=상속세는 일반인들과는 상관없는 세금이다. 국세청의 2004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한해 동안 숨진 사람은 25만8021명이었고, 이 중 상속세를 낼 만큼 재산을 남긴 사람은 1808명으로, 0.7%에 불과했다. 상속인들은 4조7919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아 이 중 상속재산의 19.9%에 해당하는 9539억원을 상속세로 냈다. 상속세 최고 세율이 50%에 이르지만, 이는 ‘과표 30억원’(상속재산으론 최소 35억원) 이상에만 적용될 뿐이다. 상속가액이 20억원 밑이라면 평균 실효세율은 5%도 안 된다. 또 부동산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해 실제 실효세율은 더 낮다.
재계는 아직 뚜렷한 요구사항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 △경영권 지분에 대한 할증과세 폐지 △주식 상속에 대한 감면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세 최고 세율을 낮출 때, 혜택받는 사람은 2004년 기준으로 연간 245명(상속재산 30억원 이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상속세를 내지 않는 일반인들에게 상속세를 왜 내려야 하는지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국회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속세 인하, 재벌체제 공고화?=재계가 상속세 인하를 요구하는 이유는 엄청난 액수의 상속세를 돈으로 다 내지 못해 지분으로 납부하면, 가뜩이나 적은 지분이 더 줄어 경영권 승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대개 주식이 분산돼 인수·합병이 활발한 반면, 유럽은 대주주가 많은 지분을 갖고 가업을 계승하는 형태다. 우리나라는 대주주가 평균 5% 이하의 적은 지분을 갖고도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절대권한을 행사하는 독특한 형태다. 이에 대해 재계는 “한국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자본이 없는 나라에서 기업들이 활발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한다. 그런데 각 기업들이 2세 승계시점에서 경영권을 지키느라 지분 확대에 주력한다면 투자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속세 부담을 덜면, 경영권 승계가 쉬워지고, 그러면 투자를 더욱 늘릴 수 있고, 이는 고용확대와 국민경제 활성화 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재계 논리다. 결국 상속세 인하 문제는 ‘투자확대’와 ‘재벌체제’를 맞바꾸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궁색한 논리”라며 “법인세는 투자 연관성이 높지만, 상속세를 내린다고 투자가 활성화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도 상속세를 인하하면 재계가 지금과 달리 상속 관련 탈법행위를 않는 등 상속과정이 투명해지는 긍정적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재계의 상속세 인하 주장은 재산권과 경영권을 혼동하는 것으로, 시장경제에도 맞지 않는다”며 “경영권은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므로 ‘상속’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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