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해 검찰이 17일 정몽구 회장의 중국 방문 이후 정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소환 조사한 뒤 기소할 방침을 시사함에 따라 '결국 올 것이 오는 것 아니냐'며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은 또 검찰이 정 회장 부자와 그룹 주요 임원진을 포함해 일괄 처리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도 사법처리의 수위와 대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 사법처리 대상은 = 검찰이 지난달 26일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수사에 본격 착수한 이래 현재까지 그룹 계열사의 임원진 상당수가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거나 체포되기까지 했다.
비자금과 관련해 글로비스 이주은 사장은 이미 71억3천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며, 현대오토넷의 이일장 전 사장과 주영섭 현 사장도 여러차례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정 회장의 최측근인 현대차의 이정대 재경본부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 등 2명의 부사장은 이틀뒤 풀려나기는 했지만 지난 14일 체포까지 됐었다.
여기에 2001년말 현대차 기획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정순원 ㈜로템 부회장과 채양기 현 기획총괄본부장도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 상태다.
이들 현대차그룹 핵심 임원진 가운데 현재까지는 이주은 사장만 구속된 상태지만 검찰이 "추가 조사를 거친 뒤 이달말께 이들 임직원에 대한 구속 여부를 일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사법처리 대상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큰 상태다.
◇ 정 회장 부자 사법처리까지 갈까 = 이번 사건의 향방과 관련해 현대차그룹 안팎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 회장과 정 사장까지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다.
비자금 조성이나 집행과 관련해 정 회장 부자와 현대차그룹 관련 임원진들이 어떤 진술을 하고, 또 검찰이 어느 정도의 물증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금명간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소환 조사와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이 그동안의 수사에서 정 회장 부자 또는 어느 한 명이 비자금 조성이나 집행에 관여했다는 증거나 진술을 확보할 경우 적어도 둘 중의 한 명은 구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도 이날 브리핑에서 "정 회장 부자는 단순 참고인이 아니다"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나 "혐의 유무가 규명이 안된 상태에서 단순 참고인 신분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언급,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참고인 신분 조사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는 검찰이 정 회장 부자를 피의자로 조사할지, 단순 참고인으로 조사할지는 아직 확정하진 않았지만 정 회장 부자가 비자금 조성 등을 지시한 증거나 진술이 확보되면 사법처리할 방침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 부자가 사법처리될 경우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 다른 임원진의 경우 사법처리 수위는 낮아지겠지만 향후 '경영 공백'이 불가피질 것으로 보이고 이는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가 정 회장 부자에 대한 구속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비자금 조성 등에 정 회장 부자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을 수 있으며, 책임이 있더라도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 '불구속 기소' 등의 '관용'이 베풀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섞인 기대다.
한편 정 회장은 이날 중국 제2공장 기공식 참석차 출국하면서 기자들에게 비자금 지시와 관련해 "신문에 그렇게 났는 데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부품계열사 부채 탕감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정 회장은 사회헌납 등 기여 방안에 대해서도 "그런 것 계획없다"고 밝혀 이번 수사와 관련한 여러 해석과 전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인철 기자 aupf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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