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뒤통수 맞은’ 분위기…총수 아킬레스건 치면서 압박
검찰이 3일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외에 다른 혐의도 수사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일단 현대차의 ‘후계구도’로 수사를 확대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또 현대차 총수 일가의 ‘아킬레스건’을 직접 겨냥함으로써 수사에 비협조적인 현대차 쪽을 압박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현대·기아차 본사와 글로비스, 현대오토넷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의미 있는 단서’를 확보했음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박영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2003년 에스케이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에 버금갈 정도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비스와 현대오토넷은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업체들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후계구도’와 관련된 불법행위의 단서를 확보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은 또 ‘다른 혐의’에 대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의도적으로 빨리 한다는 게 아니라 수사가 잘 풀려가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의 이날 발언은 정 회장 쪽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검찰은 정 회장의 갑작스런 출국을 검찰의 ‘뒤통수’를 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현대차 쪽을 배려했는데, 출국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사실상 ‘도피’성 출국을 한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채 기획관은 일단 “도피성 출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켜보자”고 말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자칫 정 회장의 귀국이 늦어져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질 경우 지난해 ‘엑스파일’ 수사 때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처럼 여론의 질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비자금 수사는 결국 누가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정 회장에 대한 조사 없이는 깔끔하게 매듭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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