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2007년 건조한 쇄빙유조선 ‘바실리 딘코프’호. 삼성중공업 제공
삼성중공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 조선소와 계약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5척 중 10척의 선박 블록과 기자재 제작을 중단했다.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공조 움직임에 따른 것으로, 15척의 총 계약 금액은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통신은 26일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 계약한 엘엔지 운반선 15척 중 10척에 대한 선박 블록과 장비 제작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계약은 취소하지 않아 유효한 상태다.
양쪽이 체결한 선박 건조 방식은 삼성중공업이 국내 거제조선소에서 운반선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가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자재와 함께 블록 형태로 나눠 받아 건조하는 방식이다. 우크라 전쟁 이후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워 10척분 선박의 블록 제작을 멈췄다는 게 삼성중공업 쪽 설명이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조선소와 계약 체결 당시 수주 공시가 아니라 선박 블록·기자재 공급 공시를 낸 바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즈베즈다 조선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이달 중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특별지정제재 대상(SDN)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자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리스트에 오르면 해당 기업의 모든 자산은 동결되고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2019∼2020년 말 러시아가 추진하는 대규모 액화천연가스 개발 사업인 ‘아틱 엘엔지-2’에 투입될 쇄빙 운반선 15척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 금액이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당시 조선업계에서 역대 최대 규모 계약으로 주목받았다. 다만 삼성중공업은 건조 계약이 아닌 즈베즈다 조선소의 기술 파트너로서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즈베즈다 조선소는 러시아 극동 볼쇼이카멘에 있는 현지 최대 조선소 중 하나다. 삼성중공업은 로이터통신 보도에 대해 “선박 5척은 이미 건조됐고, 나머지 10척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중단됐지만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는 다른 조선업체에도 미치고 있다. 에이치디(HD)한국조선해양의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은 2017년 ‘즈베즈다-현대 LLC’라는 합작사를 만들었고, 현재도 49%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다만 현대삼호중공업을 비롯해 한국조선해양의 조선 계열사가 러시아 쪽과 맺은 선박 건조계약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은 2021년까지 러시아와 3척의 엘앤지 운반선 건조 계약을 맺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순차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