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년여 동안 5대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 4건 중 1건은 형사고발이 이뤄지지 않고 은행 내부 징계로 갈음된 것으로 나타났다. 횡령 사고에는 형사고발을 의무화하는 등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일 한겨레가 김한규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2019년 1월부터 올해 9월 사이에 발생한 횡령 사건은 모두 63건이다. 사건 처리가 진행 중인 5건을 뺀 58건 중 16건은 형사고발되지 않고 자체 징계 처리로 끝났다.
횡령 사고에 형사고발이 뒤따르지 않은 건 고발 예외 규정을 대부분 은행들이 내규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을 제외한 4대 은행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고금액과 사고기간, 사고횟수, 사고동기, 사회적 물의 야기 여부, 고의성 여부, 외부와의 공모, 손실금액 변상 여부 등과 같은 정상 참작 항목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은행들의 이런 내규에 대해선 금융당국에서도 쓴 소리가 나온 바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은행 내부 규정상 일정 금액 이하이면 내부 징계로 끝나고 고소를 안 하는 것 같다. 그 기준이란 게 자산규모 대비 얼마인데 은행 규모가 워낙 커져서 기준에 걸리려면 몇백억 이상이 돼야 한다”며 “엄중한 기준으로 형사고발 하도록 은행 등과 소통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발 필수 조건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는 것은 맞다.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공동으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돼, 은행연합회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횡령 사고 발생 자체가 내부 통제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의미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고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했다. 금융사고에 대해 연구한 양채열 전남대 교수(경영학)는 “(금융회사가) 범죄를 탐지하고 처벌하는 시스템의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 범죄를 범할 경우, 적발돼 받는 처벌이 범죄 성공 시 얻을 이익보다 커야 임직원이 스스로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한규 의원은 “은행권 금융사고가 매년 대범해지고 있다”며 “횡령이 적발돼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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