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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성장 뒤에 7번의 침체가 왔다…데이터 의존 통화정책의 함정

등록 2023-12-10 09:00수정 2023-12-10 09:42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미국 경제가 튼튼함을 유지하려면 소비시장 활성화가 지속돼야 한다. 2022년 12월21일 뉴욕의 한 백화점이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다. REUTERS
미국 경제가 튼튼함을 유지하려면 소비시장 활성화가 지속돼야 한다. 2022년 12월21일 뉴욕의 한 백화점이 쇼핑객들로 붐비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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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023년 3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발표됐다. 연율로 무려 4.9%다. 전 분기 2.1% 성장했으니 두 배를 뛰어넘는 놀라운 성장세다. 성장의 동력은 소비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소비가 차지한다. 소비가 늘면 성장할 수밖에 없다. 9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3.75%, 전월 대비로는 0.70% 성장했다. 2023년 들어 6월까지 둔화하던 소매판매 성장률은 7월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인다. 노동시장 강세 역시 계속됐다. 실업률은 낮고 일자리는 여전히 풍부하다.

침체의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번에는 경기침체가 없을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간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입장은 이를 방증한다. 최소한 연준 인사들은 10월 말 현재까지 침체보다는 인플레이션에 주목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0월19일 뉴욕경제클럽에서 한 발언을 보면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추세를 상회하는 지속적인 성장 또는 노동시장의 강함이 유지된다는 증거를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 위험은 여전하다. 이런 데이터를 보면 통화정책의 추가적 긴축은 정당화될 수 있다. 여전히 인플레이션은 너무 높고 몇 개월간의 좋은 데이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긴축은 무력한가

연준은 짧은 기간에 금리를 대폭 올렸다. 과감한 금리인상은 2023년 7월까지 계속됐고 5.5%에 이르는 높은 금리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한데도 미국 경제는 강하다. 파월 의장의 말대로 노동시장과 소매판매의 강세는 경제학의 ABC를 무력화한 듯하다. 높은 금리는 경제에 상처를 준다는 원칙이 흔들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경제의 또 다른 원칙을 고려할 때 미국 경제가 강건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 덕분이다. 돈을 직접 가계에 주면 소비 급증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성장 역시 가시화한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 셧다운 이후 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유동성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4조달러(약 1경8440조원)를 약간 넘던 미국의 M2(총통화)는 2022년 7월 21조달러를 넘었다. 그 뒤 약간 줄었다고 하지만 2023년 9월 현재 여전히 20조달러를 상회한다. 풍부한 유동성으로 수요는 급증했고 이는 일자리 성장, 더 높은 임금,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됐다.

큰불을 잡는 건 매우 어렵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통화 공급 급증은 일종의 큰불이다. ‘진화’는 어렵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2023년 경기 둔화 혹은 침체를 전망했던 이들이 놓친 것은 고금리로 인한 침체의 불가피성이 아니다. 경기부양과 기타 금융지원책의 잔여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 지속 기간은 얼마일지에 대한 예측 실패다. 사실, 이 부문을 정확히 측정하는 건 어렵다. 긴축의 힘을 믿었던 이들이 간과한 것은 유동성의 힘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있다. 긴축으로 초과 유동성이 점차 감소하면 그에 따라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압력은 둔화한다는 것이다.

경제지표의 후행성

대부분의 경제지표는 현실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과거를 보여줄 뿐이다. 의미가 없지 않지만 현재와 미래를 말해주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추세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그마저도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성장률이다. 성장률이 미래를 보여주려면 침체를 앞두고 둔화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를 부정한다. 1950년대 중반 이래 미국에서 열 번의 침체가 있었다. 이 중 일곱 번의 침체는 실질GDP가 2% 이상이던 분기 이후에 발생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장률 측면에서 징후가 없었지만 침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1973년 1월1일 기준 미국 실질GDP는 7.56%에 이르렀지만 12월1일 침체가 공식화됐다. 2000년 8월1일 성장률은 3.97%임에도 2001년 3월1일 침체가 시작됐다. 팬데믹에 따른 침체는 말할 필요가 없다. 2% 이상 성장하던 경제는 갑자기 침체로 돌입했다.

소매판매도 후행지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최근의 강력한 소매판매가 침체를 부정한다고 믿는다. 소매판매가 최근 늘었다는 것은 팩트다. 낮은 저축률, 느린 인구성장률, 둔화된 자신감, 게걸음 치는 주택시장, 높은 금리 비용, 신용위축에도 미국 소비자는 3분기에 4% 이상 실질소비를 늘렸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침체에 앞서 소매판매나 일자리가 증가하는 것은 상례였다. 최근 소매판매 강세가 침체 위험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발생한 3개 침체 양상을 보면 소매판매는 침체 직전까지도 강했다. 2000년 초반, 금융위기, 팬데믹 침체 모두 그 직전까지 소매판매는 강했다. 현재의 소매판매 강세가 침체를 피할 수 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2023년 11월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금리정책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2023년 11월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금리정책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외려 소매판매와 일자리 간 차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이 둘의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일자리가 늘었다지만 팬데믹 이전 추세선에 겨우 다다른 상황이다. 반면 소매판매는 추세선을 이탈해 급등했다. 2010~2020년 둘의 추세는 거의 동행했다. 한데 2020년부터 둘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격차는 지속 불가능해 보인다. 소매판매가 계속 늘려면 소득이 늘어야 한다. 소득이 늘려면 일자리가 계속 늘어야 한다. 이는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둘의 격차가 좁혀지는 건 소매판매 증가 둔화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소매판매와 일자리 이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건 소매판매 강세로 인한 미국 경제의 강건함이 구조적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큼을 말해준다. 미국 경제의 튼튼함은 소매판매가 무너지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소매판매는 유동성 고갈로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실업률이 돌발적으로 급등하는 지점이 있다. 실업률도 금리를 후행해 움직인다. 금리 정점 이후 침체 기운이 드리워야 실업률은 오른다. 현재의 낮은 실업률이 침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연준이 곧 리스크

연준이 리스크다. 파월 의장과 연준 위원들은 통화정책을 데이터에 기초해 결정하겠다는 기조를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강력한 데이터는 과거의 수치일 뿐 미래엔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통화정책이 ‘너무 오랜 기간 너무 긴축적’으로 운용되면 경제 수축을 가중할 위험이 커진다. 연준은 지표의 후행성을 무시한다. 그들의 당면 목표는 수요를 둔화시켜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집중됐다. 이것이 연준의 과도한 긴축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이런 고집이 둔화로 그칠 것을 심각한 수축으로 경기를 밀어넣는다. 역사적 경험도 무시한다. 연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위기는 커졌다. 통화 공급이 줄면 침체는 필연이었다. 오늘의 인플레이션은 셧다운에 따른 공급 제한과 경기부양으로 인한 수요 증가로 발생했다. M2 공급이 급증한 결과였다. 현재 M2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경제지표가 급격히 방향을 바꾸는 시점은 경제가 통화정책을 반영하는 때가 된다. 보통은 통화정책이 시행되고 한참이 흘러야 그 시점이 온다. 지연효과 때문이다. 금리가 오른다고 모든 경제주체가 일시에 타격받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저금리 기간이 길수록 금리 상승기의 가중평균금리는 정책금리보다 낮기 마련이다. 분명한 점은 지연효과로 금리인상의 부정적 영향은 늦어지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통화 공급, 소매판매, 일자리 데이터 등을 볼 때 침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지난 시점을 대표할 뿐이다. 일자리와 소매판매 데이터는 후행한다. 다시 말해, 침체가 발생한 뒤에야 꺾인다. 침체 전까지 노동시장과 소매판매는 강함을 유지한다. 침체가 발생하면 실업률은 급등하고 소매판매는 급락한다. 연준은 백미러를 통해 통화정책을 관리한다. 즉,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결정한다. 지난 데이터에 집중하느라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선행성을 가진 지표를 무시한다. 이들 지표는 경제가 침체로 향한다고 말하지만 무시된다. 수익률곡선 역전은 명백한 선행지표지만 시장에서도 연준 인사들에게도 중대한 것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경기선행지수 6개월 변화율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11월1일 발표된 연준 성명의 톤이다. 많이 누그러졌고 연준 의장의 발언 역시 긴축이 막바지에 들어섰다는 것을 시사한다. 파월의 발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9월 점도표(금리 전망을 점으로 표시한 도표)는 주관적 의견일 뿐이다. 미리 결론을 합의해 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이다. 9월 점도표는 2023년에 한 번 더 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파월의 이번 발언은 이를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도 높은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은 데이터 의존 통화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침체를 유도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는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후유증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연착륙이다. 그 필수조건은 통화정책의 유연성이다. 교조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또 한 번 미국은 생각보다 깊은 침체를 맞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세계는 홍역을 앓을 수도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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