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한은 제공
올들어 기획재정부가 110조원가량 가져다 쓴 한국은행 일시차입금 급증 현상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가 “일시대출금 문제는 국회에서 한도나 부대조건 등을 논의해 개선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 밑(올해 1.9%, 내년 1.7%)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3일 한국은행을 상대로 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총재는 “정부의 중앙은행 대출은 캐나다를 빼고는 대부분 선진국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채권 발행 없이 반복적이고 기조적인 일시대출은 뚜렷한 단점이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정부가 재정의 단기유동성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채권 발행보다는 60일 이내의 한은 대출금으로 충당하는 게 비용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일시대출금 문제는 장단점이 있어 국회에서 한도나 부대조건 등을 논의해 개선 방안을 찾는 게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사상 최대 세수 결손에 따른 재정 부족 자금을 메우기 위해 한국은행 일시차입금을 연초부터 대규모로 끌어와 활용하고 있다. 이날 국감에서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기획재정부와 한은 보고 자료를 종합하면 정부가 올해 들어 9월까지 한은에서 모두 64차례에 걸쳐 113조6천억원의 일시차입금을 조달했으며, 이에 따른 이자 비용은 15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올해를 제외한 지난 9년 동안의 연평균 일시대출금 규모와 견줘보면, 올해 일시차입금은 3.3배, 이자비용은 약 9.1배나 많은 수준이다. 진 의원은 “정부의 무분별한 한은 일시차입은 사실상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어서 통화정책을 교란하고 물가와 금융 안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의 한은 일시차입금 급증은 현행 국고금 관리법령에 어긋날 수도 있다. 한은 금통위는 올해 1월 ‘2023년도 대정부 일시 대출금 한도(통합계정 40조원) 및 대출 조건 결정안’을 의결하면서 국고관리법에 근거해 ‘정부는 일시적인 부족 자금을 한은으로부터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는 부대조건을 명시했다. 또 ‘정부는 한은으로부터 일시차입이 기조적인 부족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이를 두고 진 의원은 “정부 재정은 국회가 심의한 예산과 재정 경로대로 집행하는 게 원칙인데, 기조적이거나 반복적인 한은 일시차입은 세수가 들어오기 전에 일시적인 자금 부족분을 한은에 돈을 찍어내 메우도록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은 금통위에서 정부에게 다른 방법을 쓰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편, 한은은 이날 강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주요국 연도별 국내총생산(GDP)갭 현황' 자료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를 밑돈 뒤, 내년에는 1%대 중후반까지 내려앉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전했다. 오이시디는 지난 6월 회원국별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수정하면서 10년 전 3.5%(2013년)이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꾸준히 떨어져 올해는 1.9%, 내년에는 1.7%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한 나라의 노동·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를 최대한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뜻한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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