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10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 쪽으로 반 발짝 다가섰다. 지난 16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연 3.5%인 기준금리를 또 동결했으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추가 인상의 가능성을 더 강하게 내비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지속’한다는 문구를 통화정책 결정문에 넣으며 금리 조기 인하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일축했다.
이런 시각 변화는 무엇보다 소비자물가 예상 경로가 달라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8월에 예측한 물가상승률 하락 경로보다는 속도가 늦어지지 않겠냐는 게 금통위원들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애초 한은은 늦어도 내년 말까지 목표 수준(2%)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근접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높다고 본 이유는 우선 이스라엘-하마스 간 분쟁 등 물가에 영향을 주는 여러 경제 변수들이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 총재는 “무력 충돌 사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며 “무력 충돌 이전에도 유가는 8월 전망 당시보다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무력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 유가가 150달러까지도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상황이다.
4월 이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도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한은은 올해 들어 가계부채 누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이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금융 불안 위험에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란 의견을 밝힌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만 이 총재는 “금리를 통해 가계부채를 조절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며 “그렇게 하려면 금리를 아주 크게 올리거나 내려야 하는데,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 금통위원’의 의견이 금통위 내 다수 의견은 아니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한은이 2월 이후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사이에 미국 등 주요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물가를 반영한 기준금리(실질 기준금리)가 낮아진 상황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그간 이 총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로 보면, 현재 기준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인 수준이라고 언급해왔다. 하지만 9월 현재 주요국 명목 정책금리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한은 기준금리 수준은 주요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완화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한편 이 총재는 “금리가 금방 예전처럼 다시 1%대로 떨어질 것 같지 않다”며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더라도 자기 돈 투자가 아니라 레버리지 해서(돈을 빌려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금융 부담이 금방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고하겠다”란 언급도 내놨다. 빚을 내어 투자하기에는 금리 부담이 상당 기간 크게 지속되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그는 또 “한은이 통화정책을 느슨하게 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 (금통위원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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