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카이스트 ‘실패 주간’에 전시될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학생들의 실패담과 소회가 사진과 메모로 담겨있다. 카이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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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케미컬(화학약품) 0.1밀리리터(mL) 때문에 모든 실험 계획을 취소했다. 주말까지 반납하고 진행하려 했던 건데, 약품 0.1mL가 부족해 어제 들인 시간과 노력이 다 허사가 됐다. 이렇게 또 일주일이 지연된다.” 한 학생의 연구 실패담이다. 허탈하고 막막한 실패의 순간, 혼자 무너지지 않고 공유하고 극복하자는 취지의 ‘실패 자랑 대회’가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오는 23일부터 학생들이 공부·연구·과제를 하며 ‘실패한 순간’을 공유하고 자랑하는 행사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한 때는 학생들이 잇달아 비극적인
선택을 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의 상징이었던 카이스트가 오는 23일부터 2주간을 ‘실패주간’으로 지정해 학생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2021년 6월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설립된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소장 조성호)가 실패를 주제로 삼아 처음 시도하는 행사다.
행사가 시작되는 23일에는 대전 본원 창의학습관에서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린다. 지난 6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진행한 연구 프로그램에서 수집된 재학생들의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일상에서 실패를 느낀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당시의 생각을 기록한 메모가 함께 전시된다. 전시회가 끝나도 72개 장면은 온라인에서 계속 공개하는 등 실패의 순간에 관한 소통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23일 카이스트 ‘실패 주간’에 전시될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학생들의 실패담과 소회가 사진과 메모로 담겨있다. 카이스트 제공
다음 달 1일에는 학생들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가 열린다. 재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학업 과제뿐만 아니라 연애·진로 등 인생의 과제에서 실패한 경험담을 발표하는 형식이다. 현장 투표를 통한 인기상, 가장 마음 아픈 실패 경험자에게 주는 ‘마상’ 등도 시상한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다소 경쟁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분위기에 익숙한 카이스트 학생들이 유쾌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동료들과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가 오는 23일부터 학생들이 공부·연구·과제를 하며 ‘실패한 순간’을 공유하고 자랑하는 행사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실패 주간 마지막 날인 다음달 3일에는 리사 손 교수(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버나드 컬리지 심리학과)와 김수안 교수(성균관대 심리학과) 초청 ‘카이스트 실패 세미나’가 열린다. 전문가들과 학생들이 함께 실패를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은 “성취와 성공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일상과 인생 여정에도 실패와 역경은 반드시 존재하며, 그 속에서 함께 배울만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며 “캠퍼스 곳곳에 마련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실패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