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질주하는 게 아니라, 절뚝거리며 간신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피에르-올리비에 구린샤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일(현지시각)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고물가·고금리 위기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저성장의 늪’이 여전히 깊다는 얘기다. 중국의 경기 둔화, 고금리 장기화에 더해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지정학적 위기까지 터지며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안개도 부쩍 짙어지고 있다.
이날 아이엠에프는 “세계 경제의 경착륙(급격한 경기 하강) 가능성은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앞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은행발 위기가 불거졌던 지난 4월 보고서에서 경착륙을 경고한 것에 견줘 다소 낙관적으로 돌아섰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아이엠에프 총재도 지난 5일 코트디부아르 연설에서 “세계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속 사정은 녹록지 않다. 아이엠에프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 3.5%에서 올해 3.0%, 내년 2.9%로 계속 가라앉을 것으로 봤다. 내년 전망값을 지난 7월 전망에 견줘 0.1%포인트 끌어내렸다. 이는 지난 2000∼2019년 20년치 성장률 평균(3.8%)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나라별 격차가 뚜렷하다. 미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각각 2.1%, 1.5%로 예상했다. 석 달 전 전망에 견줘 0.3%포인트, 0.5%포인트나 상향한 수치다.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미국이 당분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의미다.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값도 이전보다 0.6%포인트 높은 2.0%로 조정했다.
반면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 5.0%, 내년 4.2%로 제시했다. 기존 전망 대비 0.2%포인트, 0.3%포인트 각각 낮췄다. 부동산 위기 등으로 내년 성장폭이 중국 정부 목표치인 5% 안팎에도 못 미치며 세계 경제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독일은 올해 역성장(-0.5%)하고 내년 성장률 역시 0.9%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아이엠에프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1.4%로 유지하면서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기존 대비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성장 둔화를 반영했다.
파란색 선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연도별 5년 뒤 성장률 전망값 변화 추이. IMF 보고서 갈무리
우려스러운 건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경제에 저성장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보고서에 아이엠에프는 이례적으로 2008년 이후 최근까지 세계 경제의 중기(향후 5년) 성장률 전망값 변화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이 전망치는 2008년 당시 4.9%에서 올해 3.0%로 15년 사이 1.9%포인트 급락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을 덮친 저성장 기조가 생산성 악화, 인구 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미국 등 일부 국가만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 경제의 분절화 현상은 최근 새롭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아이엠에프에서 일했던 한 기획재정부 관료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선 무역 파트너국들의 경제가 고르게 좋아야 도움이 된다”며 “특정 국가를 제외한 전반적인 세계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는 우리 경제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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