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주식거래 중개인들. 지난 30년 동안 기업이익과 주식 수익률이 크게 늘어난 데는 금리와 세율 인하가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지적됐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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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금융경제 토론 시리즈’라는 워킹페이퍼(Working Paper)를 공개 배포한다. 일종의 예비논문을 공개하는 것은 토론과 비판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들 작업논문은 연준의 공식 방침을 담은 게 아니다. 그러나 의미가 없지 않다. 토론에 부칠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해 공개하기 때문이다. 2023년 6월 배포된 ‘2023-041 페이퍼’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대의 끝: 기업이익 성장과 주식 수익률의 장기 둔화 임박’이라는 도발적 제목이 붙었다. 풀어 쓰면, 기업이익이 늘어나고 주식 수익률이 오르는 시대가 끝났고, 장기적으로 둔화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연준 리서치 스태프인 마이클 스몰랸스키다.
이 논문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저자의 논지에 공감했다. 기업의 성장과 수익률 둔화가 거시적 흐름이란 게 저자의 주장이다. 거시적 변화가 모든 기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거시경제의 상황 악화에도 선전한다. 개별 기업의 이익률 또한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 사례를 뺀다면 그의 논지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익 증가의 진짜 원인
기업이익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 이들 대부분은 기업 스스로 통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익을 늘리기 위해 구조조정을 포함한 원가 절감 노력을 할 수 있다. 혁신 제품을 개발해 독점적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통제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금리와 법인세다. 이들은 기업이익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저자는 지난 30년 동안의 금리와 법인세 추이가 어떻게 기업이익과 연결됐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를 한 구간으로 설정한 뒤, 1989년 이전의 다른 구간과 비교했다. 두 구간은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1989~2019년 실질 기업이익은 연 3.8% 성장했다. 이는 비교구간(1962~1989) 성장률의 거의 두 배다. 1989~2019년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는 배당을 제외하고 매년 5.5% 증가했다. 지난 30년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비교구간에 비해 둔화했지만 기업이익과 주식 수익률은 외려 늘어났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전 30년은 예외라는 게 내 핵심 결론이다. 이 기간 금리와 법인세율 둘 다 계속 내려갔다. 이것이 기입이익 성장을 기계적으로 촉진했다. 특히 1989~2019년 발생한 실질 기업이익 성장치의 40%는 금리와 법인세 인하 덕이었다.” 두 기간 기업이익 증가에 차이가 발생하는 주요 요인이 금리와 법인세 인하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그 증거로 1989~2019년 실질 EBIT(이자와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 성장률 2.2%보다 1947~1989년 EBIT 성장률(2.4%)이 더 높았던 점을 든다. 즉 이자와 세금을 제외하기 전 이익은 실질 기업이익 성장률이 낮은 비교구간에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금리와 세율 인하가 없었다면 지난 30년의 놀라운 기업이익은 있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국채와 회사채 금리는 지난 30년 동안 지속해서 하락했다. 1980년대 초 연 10%를 훌쩍 뛰어넘던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2019년 1%대로 떨어졌다. 투자등급 회사채 수익률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20세기 말 연 8%를 넘나들던 수익률이 2019년 2%대로 주저앉았다. S&P500 기업 가운데 비금융기업이 1989년 부담한 부채원가율(총부채에서 총이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였다. 2019년 말 이 수치는 3.7%로 줄었다. 기업들은 이 기회를 틈타 레버리지(대출)를 사상 최고 수준까지 늘렸다. 총부채를 총자산으로 나눈 기업 레버리지 비율이 1960년대 초 20%대 수준에서 2019년 35% 이상으로 치솟았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레버리지 효과는 커진다. 레버리지 확대, 줄어든 이자비용이 기업이익을 늘렸다.
2018년 6월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금 감면과 일자리 법’(Tax Cuts and Jobs Act) 통과 6개월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법은 법인세 인하 속도를 높였다. REUTERS
세율은 어떤가?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세금이 소득의 몇%를 차지하는가를 나타내는 실효법인세율(총세금액을 총세전소득으로 나눈 값)이 1989년까지 34%였다. 1962~1982년 평균(44%)보다 낮다.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발생 전인 2007년까지 실효법인세율은 평균 32%로 더 내려갔다. 금융위기 이후에 다시 낮아졌다. 2017년 발효된 세금 감면 법안(Tax Cuts and Jobs Act)이 여기에 불을 붙였다. 이 법으로 법인세 법정세율이 35%에서 21%로 떨어졌다. 이로써 실효법인세율이 2016년 23%에서 2019년 15%로 줄었다.” 저자는 지난 30년 동안 이어진 금리와 세율 인하가 기업이익에 기여한 공헌도를 40%로 추정했다. 금리와 세율 인하가 없었다면 기업이익의 40% 정도가 줄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래 금리와 세율
과거 기업이익과 주식 수익률의 고공행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다. 앞으로 금리와 세율 변화 추이가 어떻게 될지 알면 기업이익과 주가가 어떻게 변할지 추정할 수 있다. 저자는 지난 30년처럼 금리와 세율이 내려가는 것이 “지속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라 주식 고평가 시대의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법인세와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줄었다는 점을 든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법인세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를 고려할 때 무차별 국채 발행을 줄이는 게 불가피하다. 부족한 부분은 법인세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반면 금리는 경기 둔화나 침체가 가시화하면 지난 10년 저점까지 떨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금리가 마이너스로 가지 않는 한 기업이 실효금리 인하로 얻을 추가 이익이 거의 없다.
금리와 세율 인하 효과가 사라지면 기업이익 성장률은 어떻게 될까? 이론적으로 GDP 성장률에 수렴한다. 앞으로 GDP와 기업이익의 성장률 차이가 점차 좁혀질 수 있다. GDP 성장 정도의 기업이익 증가도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현재 주식에 대한 높은 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지난 30년 강건했던 기업이익 성장률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GDP 성장을 뛰어넘는 이익 증가를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기업이익 증가가 GDP 성장 수준에 수렴한다면 지금 같은 높은 밸류에이션은 수정돼야 한다. 주식 가격을 평가할 때 지금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냉정하다. 평균 이하 이익 증가를 보이는 주식에 평균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 주식 수익률이 점차 하락할 수 있다.
“지난 30년 예외적이었던 주식시장의 성적이 무한정 지속될 것으로 가정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분석은 그렇지 않다. 주식 수익률과 기업이익 증가율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이 결론은 금리와 실효법인세율이 2019년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가정을 근거로 한다.”
금리는 2019년 12월 벤치마크인 미국채 10년물 수익률 기준으로 1.9%였다. 장기적으로 금리가 그 이하로 떨어질 것 같지 않다. 인플레이션을 연평균 2%로 가정할 때 미국 정부는 실질금리를 0으로 만들기 위해 10년물 수익률을 2% 수준에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금리가 2019년 수준 아래로 떨어져도 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태가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것은 미국 경제의 둔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이익과 주식 수익률에 부정적이다.
실효법인세율도 마찬가지다. 사실 최근 법인세율이 조금 올랐다.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최소 법인세 15%를 확정했다. 법정 법인세율을 21%까지 낮췄던 흐름이 이제 역전되고 있다. 미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법인세 인하는 추가 재정적자를 뜻한다. 미국 정부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법인세 인하는 당분간 없으리란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금리와 법인세 인하라는 지난 30년의 순풍은 기업이익 증가를 촉진했다. GDP 성장률보다 3% 정도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금은 다르다. 고금리와 높은 세율이 눈앞에 와 있다. 만약 금리가 현재 수준이고 세율이 오른다면 명목이익 성장률 4%가 최선일 수 있다. 팬데믹 이전 15년 동안 미국 실질 GDP는 연 1.9% 성장했다. 향후 10년의 성장률도 의회예산국은 1.9%로 전망한다. 따라서 주가와 기업이익 실질 성장률은 연간 2%를 넘을 수 없다. 낙관적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그렇다. 개별 기업의 성장률과 주식 수익률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지난 30년 동안 어떤 기업이든 낮은 금리와 세율의 도움으로 이익을 이례적으로 늘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저자는 그런 시대가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