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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페미니즘 올라탄 바비…마텔은 왜 ‘셀프디스’에 뛰어들었나

등록 2023-09-08 09:00수정 2023-09-08 10:19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세계적 장난감 기업인 미국 마텔의 ‘바비 인형’을 소재로 각성하는 여성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바비’가 흥행하고 있다. 2023년 8월3일 일본 도쿄 시내에 내걸린 ‘바비’ 광고판. REUTERS
세계적 장난감 기업인 미국 마텔의 ‘바비 인형’을 소재로 각성하는 여성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바비’가 흥행하고 있다. 2023년 8월3일 일본 도쿄 시내에 내걸린 ‘바비’ 광고판.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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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영화 ‘바비’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미국 소비가 매우 좋은 상황인 거 같은데요. 이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문제가 될까요, 아니면 경제의 연착륙을 암시하는 좋은 소식일까요?”

2023년 7월26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정책금리 인상 뒤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연준을 출입하는 지나 스미알렉 뉴욕타임스 기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회견 닷새 전 개봉한 영화가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소비 호황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반향이 컸다는 얘기다.

‘바비’는 세계적 장난감 기업인 미국 마텔의 ‘바비 인형’을 소재로 한 영화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마고 로비가 공동설립한 럭키챕엔터테인먼트(LuckyChap Entertainment)와 마텔필름스 등이 제작하고 워너브러더스가 배급을 맡았다. 금요일인 7월21일 개봉해 주말까지 사흘간 1억5500만달러(약 2천억원)를 벌어들이며 코로나19 이후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바비’, 가부장제 사회 풍자

‘바비’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각성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눈에 띄는 건 영화의 농담과 풍자가 마텔은 물론 마텔의 대표 장난감인 바비 인형까지 겨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10대 사샤는 ‘쭉쭉 빵빵한’ 금발의 백인 바비를 보고 외친다. “모든 여자가 너처럼 돼야 한다는 강박, 아름다움의 기준이 너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 평등이 50년은 미뤄졌어, 이 파시스트야!”

마텔의 이런 ‘셀프 디스’(스스로를 깎아내리기)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이 회사 재무제표에 있다. 사실 바비는 2023년 벌써 64살이 된 중년이다. 마텔의 누리집을 보면 이 회사는 1945년 루스와 엘리엇 핸들러 부부, 해럴드 맷슨이 차고에서 설립했다. 루스 핸들러는 딸 바버라가 종이인형을 가지고 노는 걸 보고 1959년 바비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마텔은 이듬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됐다.

마텔 주가는 2013년 주당 45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까지 가파른 내림세를 탔다. 바비는 성을 상품화하고 백인우월주의를 반영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968년 흑인 바비, 1985년 ‘유리 천장’을 깬 바비, 2016년 세 가지 체형을 가진 바비 등이 출시된 배경이다. 더 큰 위협은 스마트폰과 유튜브, 게임의 등장이다.

마텔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7년 미국 최대 장난감 유통업체 토이저러스의 폐업을 계기로 2023년까지 공장 폐쇄, 인력 감축, 비용 절감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다만 2022년까지 실적 추이는 나쁘지 않다. 5년 연속 줄어들던 매출은 2019년 45억달러로 감소세를 멈추고 2021년 54억6천만달러로 늘어났다. 2022년엔 이보다 약간 적은 54억3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19년 4천만달러로 흑자 전환하고 2022년 6억8천만달러까지 불어났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아이가 많아지면서 장난감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코로나19로 장난감 반짝 특수

문제는 지금부터다. 코로나19 ‘반짝 수혜’가 끝나고 물가상승, 수요 둔화 등으로 다시 실적 악화 추세를 보여서다. 마텔의 2023년 상반기 매출액은 19억달러로 전년도 상반기에 견줘 16%나 뒷걸음질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도 5천만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마텔이 전세계 고객에게 청구한 전체 청구액(Gross Billing)의 4분의 1 남짓을 차지하는 바비 브랜드 청구액이 2023년 상반기 4억6천만달러로 전년도 상반기보다 23% 급감한 게 뼈아픈 대목이다. 마텔의 전체 장난감 청구액 감소율(16%)보다 바비가 더 큰 폭으로 판매 부진을 겪은 셈이다. 마텔의 주력 시장인 북미와 유럽 어린이들이 더는 바비 인형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뉴질랜드 웰링턴박물관에 있는 ‘바비 인형’ 전시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줄고 있다. REUTERS
뉴질랜드 웰링턴박물관에 있는 ‘바비 인형’ 전시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줄고 있다. REUTERS

마텔이 2018년 영입한 미디어업계 출신 이넌 크라이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마텔의 장난감 브랜드와 캐릭터 등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제시한다. 영화 ‘바비’는 그 신호탄이다. 크라이츠 회장은 “‘바비’ 개봉은 마텔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될 순간”이라고 했다.

영화 ‘바비’가 회사와 회사의 대표 상품인 바비 인형을 풍자 대상으로 삼도록 허용한 건 마텔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장난감 제조사의 노력이자 안간힘이다. 영화 ‘바비’가 여성주의를 대변하는 브랜드로 변신해 인형 판매와 라이선스 계약 증가 등 후광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마텔 주가는 2023년 저점이던 3월15일 주당 16.00달러에서 8월4일 주당 20.45달러로 5개월여 만에 27.8% 상승했다.

살기 위해서라면…

크라이츠 회장은 7월26일 실적발표회에서 “영화를 통해 팬층이 실제로 확장되고 있다”며 “영화의 후광효과와 경제적 측면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마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화현상으로까지 발전한 영화 ‘바비’가 정말 마텔의 기사회생에 동아줄이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중요한 건 급변하는 시장의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불편한 자기 부정조차 마다하지 않는 기업의 절박함과 이를 반영한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찬호 공인회계사 Sodo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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