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5월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3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개회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임시총회를 앞두고 삼성·현대차·엘지(LG)·에스케이(SK) 등 4대 그룹의 재가입 과정이 투명한 절차나 공식 발표 없이 ‘깜깜이’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 계열사 중 삼성증권은 전경련 총회를 하루 앞둔 21일 이사회를 열어 “정경유착 방지 장치가 미흡하다”며 전경련 재가입에 반대 의견을 냈다. 4대 그룹은 그동안 ‘모나지 않은’ 일괄 재가입에 방점을 뒀는데, 다급히 추진하다 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다.
삼성증권은 이날 오후 열린 이사회에서 전경련에 재가입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협약사가 아니어서 정경유착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사진의 우려가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 준감위와 협약을 맺은 곳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에스디아이(SDI), 삼성전기, 삼성에스디에스(SDS), 삼성화재 등 7곳이다.
앞서 삼성 준감위는 “전경련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며 이사회와 경영진에 공을 넘긴 바 있다. 4대 그룹 계열사 중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한 곳은 삼성증권이 처음이다.
삼성증권이 이사회의 반대 의견 등을 이유로 전경련 재가입을 유보했지만, 다른 4대 그룹 계열사들은 재가입 문제는 이사회 의결 안건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4대 그룹 관계자는 “당장 전경련에 일정 금액 이상의 회비를 내지 않는 한 이사회 규정상 의결 사안이 아닌 보고 사안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보고 안건은 이사회 승인(의결)이 필요 없고 공시·공표 의무도 없다.
삼성전자도 지난 18일 삼성 준감위의 ‘조건부 승인’ 권고 이후 이사회 보고로 논의 절차를 마무리했다. 다른 4대 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대 그룹 계열사들은 재가입 논의를 대부분 마무리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결과를 공표한 계열사는 한곳도 없다. 정경유착이 드러나 탈퇴했던 조직에 다시 발을 들이는 중요한 사안인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공개를 꺼리는 것이다. 전경련과 4대 그룹 모두 ‘회원사 자격 자동승계’ 방식을 활용해 투명하고 윤리적인 절차를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개혁연대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역사와 전경련 복귀가 갖는 사회적 의미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각 계열사의 이사회가 정식 안건으로 논의해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이사회가 마땅히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볼 때 4대 그룹은 기존 회원사 자격을 승계하는 방식의 ‘꼼수’를 활용해 전경련 재가입에 대한 비판 여론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4대 그룹은 2016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순차적으로 전경련을 탈퇴했는데, 일부 계열사들이 전경련 산하 연구조직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사 자격은 유지했다. 전경련은 지난 5월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한경연 회원사 지위를 그대로 승계하는 방식으로 4대 그룹 복귀를 추진했다. 지난 7월에는 “한경연을 흡수통합하는 한경협으로 회원사 지위가 승계된다”며 재가입을 설득했다.
4대 그룹 계열사들이 전경련 요청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재가입이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동의나 반대 의사를 유보해도 일단 회원 자격은 자동승계된다.
4대 그룹은 전경련에 재가입하더라도 실질적인 ‘전경련 복귀’는 아니라는 태도다. 전경련에 재가입하는 모양새는 갖추지만, 당장 회비를 다시 내거나 회장단사에 가입하는 등 실질적인 활동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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