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원 사업을 통해 수술받게 된 반려견 ‘벼리’. 서울시 제공
“반려동물 진료비 부가가치세 면제가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지금 왜 필요한 건가요?”
지난달 3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사전 브리핑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역대급 세수 펑크, 고금리 부담 등 경제 현안이 많은데 반려동물 재정 지원이 시급하냐는 얘기다.
정부는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반려동물 다빈도 질병의 동물병원 진료에 대한 부가세 면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동물병원 진료 서비스에 물리는 부가세 10%를 면제해 1천만 반려인의 동물병원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다.
현행 부가세법은 수의사의 진료 서비스 중 장애인 보조견,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가축, 수산생물 질병관리법의 수산동물 진료만 면제 대상으로 규정한다. 취약 계층이나 국민 먹거리에 관한 동물 치료·수술 등만 부가세 면제를 적용하는 셈이다. 반려동물은 예방 접종, 중성화 수술, 병리 검사 등 질병 예방 목적의 진료 서비스만 부가세를 면제한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외이염, 결막염, 개 아토피성 피부염, 무릎뼈 안쪽 탈구 등 반려동물에게 자주 생기는 질병 100여개의 진료비도 부가세를 면제해줄 방침이다. 구체적인 면제 대상은 농림축산식품부 연구 용역을 거쳐 확정하기로 했다. 부가세 면제 대상 확대는 부가세법 시행령 개정 만으로 가능한 터라 국회의 법 개정은 필요없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조처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대선 당시 반려동물 치료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반려동물 진료비와 치료비 소득 공제와 부가세 면세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통상 사업자는 재화·서비스 공급가격의 10%를 부가세로 붙여 소비자가 부담한 부가세를 세무서에 대신 납부한다. 이때 자기 사업을 위해 구매한 제품·서비스에 포함된 부가세는 세무서로부터 환급받는다. 부가세 면제의 경우 이런 환급(매입 세액 공제)을 받을 수 없는 까닭에 사업자도 부가세 감면분인 10%가 아닌 4∼5%만 가격을 인하하는 경우가 흔하다. 세금만 깎아주고 진료비는 찔끔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지난 2021년 펴낸 ‘부가가치세 면제에 관한 소고’ 보고서에서 “부가세 과세의 면제 전환이 반드시 소비자에게 혜택을 준다고 말할 수 없다”며 “장기적으로 부가세 면제의 예외적 사항을 줄여나가는 것이 세수 확보, 과세 형평성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004년과 2009년 정부가 부가세 면제 대상으로 추가한 생리대 및 종이 기저귀의 과세 면제 뒤 가격 추이를 살펴봤더니, 세금만 축내고 정작 소비자 가격이 내리는 효과는 미미했다. 이런 까닭에 조세 정책을 담당하는 과세 당국 내부에도 부가세 면제 품목 확대가 아니라 축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대통령 공약이라도 정책 효과가 낮거나 무리한 것은 걸러내야 맞는다”고 털어놨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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