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케이온 서산공장 외관. 사진 에스케이온 제공.
똑같이 1조원을 조달할 뿐인데….
국내 대표 재벌 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최근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으나 이를 바라보는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한 쪽은 기대보다 투자 수요가 몰려 방긋 웃었지만 다른 쪽은 투자자들의 불안감 달래기에 분주하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은 28일 1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판다고 공시했다. 애초 5천억원 정도만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기대 이상의 수요가 몰려 발행 규모를 두배가량 늘리기로 했다. 사전 수요 예측에서 엘지엔솔의 회사채에 투자하겠다는 규모는 무려 4조7천억원을 웃돌았다. 발행 금리도 이 회사 신용등급(AA)에 견줘 11~20bp(1bp=0.01%포인트) 낮게 책정됐다. 기대보다 많은 자금을 그것도 싸게 조달한다는 뜻이다. 최근 내림세를 보이던 이 회사 주가도 29일 반등했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은 지난 23일 약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뒤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당장 주가가 4거래일 동안 누적 하락폭이 8%에 이른다. 유상증자 계획에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껴 주식을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재무 상황은 그닥 좋지는 않다. 무엇보다 넉넉치 않은 현금이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이 회사의 지난 3월 말 현재 ‘현금 및 현금성 자산’(개별 재무제표 기준)은 약 3천억원으로 3개월 만에 1천억원가량 줄었다. 지난 26일 이 회사는 증권사 연구원 등을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콜에서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선 이유에 대해 ‘현금 부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12월 자회사 에스케이온에 2조원을 출자하는 등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지원이 재무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는 점도 시장의 의구심을 사고 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지난 3월 말 부채비율(연결기준· 자회사 재무 반영)은 193.4%로 2년여 전인 2020년 말과 비교해 약 44.37%포인트 증가한 상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날 “재무위험 측면에서는 높은 투자 부담으로 인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연결기준 차입금 규모는 과거 대비 큰 폭으로 확대된 상황”이라고 했다.
물론 이번 유상증자로 조달하려는 자금은 에스케이온 지원에는 쓰이지 않는다. 모두 신사업 투자나 연구개발 캠퍼스 조성, 빚 상환에 쓰인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주가 하락의 가장 큰 배경은 에스케이온”이라고 짚으며 “에스케이온의 사업 정상화가 주가 재평가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공장을 합작해 짓는) 조인트벤처를 하더라도 물가와 건설비 증가로 2023∼2025년 에스케이온의 누적 시설투자가 23조원을 웃돌 가능성이 있다. 이에 에스케이이노베이션에서 추가 현금 유출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고위 임원은 <한겨레>에 “(현금 확보를 위해) 자사주 매각도 추진했으나 일반 투자자들의 우려를 감안해 해당 방안은 철회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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