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 전 호반건설 회장. 호반계획은 2003년 편법적인 2세 승계을 세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설법인을 만들어 2세 김대헌이 호반건설 지배권을 획득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담은 내부 보고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호반건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총수 아들 회사에 일감을 10여년 가까이 몰아주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약 608억원을 부과받았다. 과징금 규모는 일감몰아주기 사건 중 역대 세번째로 많다.
유성욱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1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호반건설이 편법으로 동일인(총수)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부당내부거래를 진행했다”라며 “(그룹) 총수 김상열이 지배하는 호반건설이 장남 김대헌 소유의 호반건설주택과 그 완전 자회사, 차남 회사 등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2003년으로 거슬러 간다. 김상열 회장은 당시 미성년자인 장남 김대헌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호반건설주택을 대신 설립한 뒤 이 회사에 분양 대행과 모델하우스 등의 일감을 몰아줬다. 이 덕분에 설립 당시 자본금 5천만원에 불과했던 호반건설주택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자본총액이 1840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만큼 상당한 이익이 누적됐다는 뜻이다. 내부거래 비중은 100%에 가까웠다. 호반건설 물량으로만 덩치를 불렸다는 뜻이다.
일감몰아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호반건설주택은 2013~2015년 기간 동안 정부의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했는데, 이 때 입찰 신청금 상당액을 호반건설로부터 받았다. 또 호반건설이 낙찰받은 공공택지 일부도 넘겨받았다. 김 총수의 둘째인 김민성씨가 대주주인 호반산업도 같은 방식의 지원을 호반건설로부터 받았다. 김 전 회장은 아들 회사에 넘겨줄 공공택지를 따내기 위해 그룹 협력사들까지 입찰에 동원하는 ‘벌떼입찰’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장·차남 회사가 무상으로 건네받은 입찰신청금은 모두 1조5753억원이며 모두 23곳의 공공택지 사업을 넘겨받았다”며 “공공택지 사업에서만 두 회사는 약 1조4천억원의 분양이익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호반건설은 장·차남가 대주주인 회사에 사업 기회를 넘기거나 약 2조6천억원 상당의 대출에 대한 보증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일감몰아주기는 호반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밑작업이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호반건설은 2018년 호반건설주택을 흡수합병했다. 일감몰아주기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피합병회사 대주주의 합병회사 지배력을 키우는 전형적인 승계 방식이다. 김대헌씨는 합병 회사 호반건설의 지분 54.73%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김상열 전 호반건설 회장의 장남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 호반건설 지분 54.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1988년생으로 호반건설주택을 거쳐 호반건설에서 미래전략실 전무, 경영부문장 부사장을 지냈다. 연합뉴스.
호반건설은 국가·지자체·공공기관 등이 제공하는 택지에 주택을 짓는 공공택지 공급 제도를 이용해 아들 회사를 부당지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호반건설(392억8천만원)을 포함해 9개 회사가 부과받은 과징금은 모두 608억1천만원이다. 이는 일감몰아주기 사건 중 삼성웰스토리 사건(2349억원)과 에스피씨(SPC)그룹 사건(647억원)에 이어 역대 3위다. 다만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 시점으로부터 공소시효(5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김상열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유 국장은 “주거안정 등 공익적 목적으로 설계된 공공택지 공급제도를 악용해 총수일가의 편법적 부의 이전에 활용한 행위를 적발하고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역대 세 번째 규모의 과징금으로 부당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시장에 경종을 올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호반그룹은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된 뒤인 지난 2021년 <서울신문>과 <전자신문>을 차례로 인수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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