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외국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에 대한 우려가 큰 가운데 국내외 노동자·이용자·공급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야당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시장 실태조사와 수요조사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을 강행해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 정부가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려면 외국인력 도입보다 여성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돌봄복지 서비스대책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한목소리로 제기됐다.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해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1년 밖에 안된 시점에서 외국인력이 도입될 경우 내국인 가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더욱 악화할 수 있어, 최소 5년은 법시행 결과를 지켜본 뒤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회는 ‘가사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주제로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단이 공동주최하고, 민주당의 서영교·서영석·이수진·이학영 의원과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관했다. 발제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이규용 선임연구위원과 조혁진 연구위원이 맡았다. 토론은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을 좌장으로 해서 국내외 가사노동자를 대표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언 위원장과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 이용자를 대표한 배수민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공급기관을 대표한 이승언 한살림서울돌봄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정부에서 이상임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이 참여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단 공동주최로 열린 ‘가사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이용자·국내외 노동자·공급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의견을 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여성의 낮은 고용률과 출산율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려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 중요한데 여성의 경력단절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 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5~54살 여성 중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42.6%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35%보다 더 높아졌다. 여성이 일을 그만둔 직접적 요인으로는 ‘긴급히 자녀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응답이 49.8%를 차지했다. 만약 여성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여건이 마련됐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줄었을 것이다.
만 15~49살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아이 숫자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로 또 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며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의 합계출산율 평균인 1.59명(2020년 기준)의 두배 수준이다.
“대통령 지시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윤 대통령은 5월23일 국무회의에서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운영 중인 외국 가사노동자 도입을 출산 장려책의 하나로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부는 이틀 뒤인 25일 토론회에서 비전문취업(E-9) 비자가 허용되는 신규 업종에 가사·돌봄 서비스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고용부와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외국 가사노동자 도입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다. 외국인력 유입에 따른 영향, 이용자의 만족도, 실제 출산율 제고 효과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침해와 국내 노동자의 피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가사노동자를 포함한 돌봄노동 종사자는 다른 직종에 비해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 기준 여성 비율이 94.2%로 높고, 50살 이상 고령 취업자 비율이 59.7%에 달하며,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 비율이 39.2%에 이르고,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29.3시간으로 짧은 반면 시간당 평균 임금은 1만183원(월평균 임금 127만5천원)으로 적다”고 설명했다.
이렇다보니 가사서비스 시장은 구인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가사노동자들은 낮은 사회적 인식, 일자리 안정성 미흡, 높은 업무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이 불만이지만 서비스 수요는 늘고 있어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초 한국노총과 가사·돌봄유니언이 공동 실시한 가사노동자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38.2%가 현재의 시간당 임금(1만2300원)은 적절하지 않으며, 적정임금 수준으로 1만6천원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가사노동자 도입은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미리 마련하는 등 세심하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한데도, 정부는 정확한 실태조사와 수요조사도 하지 않은 채 시범사업을 강행하려 한다. 단적으로 국내 가사노동자 규모조차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외국인 가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선호도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가사서비스 분야는 제조업, 농업 분야와 달리 외국인력 도입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축사에서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해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정책을 밀어붙여선 안된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주제발표를 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이규용 선임연구위원, 조혁진 연구위원. 토론좌장인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부원장, 토론자인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언 위원장, 이승언 한살림서울돌봄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배수민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 이상임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한 싱가포르·홍콩·일본·대만의 경우 출산율 제고 효과는 분명치 않다. 싱가포르는 1978년부터 외국인력을 도입했는데, 처음부터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확대가 목적이었고, 실제 출산율도 올라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2·4학년 자녀를 둔 배수민 활동가는 “가사·돌봄을 저렴하게 대신해주면 저출산이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는 저출산 원인이 사회적·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게 만드는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돌봄교실, 지역아동돌봄센터 확대와 질적 향상을 통해 현재의 돌봄기관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된다면 양육자들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육아의 병행을 어렵게 하는 장시간 노동과 성차별 직장문화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비결혼자 육아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영미 유니언 위원장은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힘들게 만드는 긴 노동시간, 불완전 고용, 교육과 주거 어려움, 돌봄서비스 공백을 해소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임 담당관은 “외국에서 출산율 제고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각국의 노동시장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외국 가사노동자 도입을 절대적이고 유일한 대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대책 중 하나로 접근하고 있고, 맞벌이 부부에게 선택지를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5월31일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사회보장 서비스도 시장화가 되고 산업화를 하고 경쟁체제로 가야한다”라면서 정부의 사회보장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여 큰 우려를 낳았다.
가사근로자법 시행 1년밖에 안 됐는데
가사노동자들은 그동안 파출부 등으로 불리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다가,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면서 최저임금과 4대보험 보장 등 법적 보호를 받게 됐다. 법 시행 1년밖에 안된 시점에서 외국인력 도입은 가사서비스 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장시간·저임금 돌봄노동시장의 근로환경 개선 없이 외국인 노동력으로 인력부족을 충당하는 방식은 돌봄노동시장 전체의 임금과 근로여건을 개선하는데 제약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조혁진 연구위원도 “내국인 가사노동자 인력이 부족한 것은 일자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가사근로자법 시행으로 처우가 개선되면 내국인 진입이 늘어나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면서 “법시행 5년 뒤에도 내국인 인력공급이 부족하다면, 그 시점에서 외국인 인력 도입을 논의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시기상조론을 폈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가사서비스 직종을 여성 고령노동자의 일자리 확대와 연결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육아도우미는 언어습득이나 육아라는 일자리의 성격상 외국인 의존도가 낮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국인 일자리의 직을 높이는 방향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수민 활동가는 “외국인력을 도입할 돈을 차라리 양육자에게 직접 (바우처 등으로) 지원해서 국내인 가사노동자를 이용하는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면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인상을 통해 수준 높은 가사서비스 공급과 장기근속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 현재도 인권·노동권 침해
김혜정 사무처장은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숙소에 기거하고 임금체불, 성폭력, 성희롱 등 심각한 인권과 노동권 침해를 받는 실정”이라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침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또 “국제노동기구(ILO)의 가사노동자 협약에서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인정, 차별금지, 학대·괴롭힘·폭력 금지, 노동시간·휴가 등에서 일반 노동자와 동등 대우, 최저임금 보장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이조차 비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가사와 아이돌봄 서비스는 재가서비스가 주를 이루게 되는데 개별사용주가 고용계약의 주체가 될 경우 대만처럼 적정 수준의 임금 가이드라인 설정, 직무 범위와 표준근로시간 설정 등 제반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외국인력이 개별 고객과 개별 계약을 맺기보다는 서비스제공업체가 외국인력을 고용해서 가정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노동권 침해 위험성이 줄어든다”고 제안했다.
외국인력이 저임금 등 근로조건에 적응을 못해 근무지를 무단 이탈해서 다른 업종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가사노동자의 평균 임금수준이 낮기 때문에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이탈률이 높은 현상이 가사 및 육아도우미 분야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와 이용자 가정 간의 신뢰 형성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승언 이사는 “아이돌봄에서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과 공감 등을 포함해서 아이의 정서나 발달과 관련한 요구가 많은데, 외국인력이 충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속기 민수빈 보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