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인상 개시 후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대체로 미국의 통화정책을 추종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반년 이상 빠른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덕분에 긴축 초기에는 꾸준히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고수했지만, 결국 미국의 강력한 인상에 맞춰 역사상 처음으로 금리를 0.50%포인트씩 2차례나 올렸다. 높은 물가에 대한 부담 외에도 연준을 따라잡으려는 의지가 금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기축통화국의 통화정책과 정책금리 결정에 다른 국가들은 매우 민감하다. 항상 적절한 금리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닌 비(非) 기축통화국들 입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결정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금리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올해는 상황이 사뭇 다른 듯하다. 숨돌릴 여유도 없이 강력했던 금리 인상 사이클은 미 연준이 인상 폭을 정상적인 수준이라고 불리는 0.25%포인트로 복귀한 이후부터다. 비기축통화국 중앙은행들이 ‘미국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거시 경제 여건, 특히 물가에 따라 차별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아마도 선진국 중 가장 차별화된 통화정책이 가능한 국가가 될 전망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전반적인 물가 여건이 안정적인 동향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연말쯤에는 2%대 진입도 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여름 9.1% 고점을 형성한 이후 오름폭은 낮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4%대 후반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한국의 물가 여건은 상당히 다른 셈이다.
팬데믹 이후 주요 국가들의 물가 상승률 고점 및 현 수준, 그리고 정책금리 인상 폭을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특히 지난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우선 물가를 견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금리를 올릴 당시에는 구분되지 않았던 국가별 정책 격차가 올해는 확연하게 드러나는 모양새다.
높은 물가 탓에 금리 인상을 재개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국가별 통화정책 차별화의 또 다른 사례다. 보통 정책금리를 올리든 내리든 통화 당국은 자신들의 정책 기조를 뚜렷하게 알리기 위해 일정 주기에서는 동일 결정을 반복한다. 금리 인상 중단은 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의미인 터라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금리 인하 개시 시점을 타진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동결 뒤 인상 재개’는 통화정책 전망에 큰 혼선을 낳는다.
6월 시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책금리를 올린 캐나다는 지난해 3월 이후 총 8회에 걸쳐 금리를 인상한 이후 3월과 4월 금리를 동결했으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자 긴축을 재개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5월에 금리 인상을 재개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최근 다시 금리를 올려 2개월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
지난해 글로벌 각국은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라는 공통분모를 기준으로 일제히 동일한 방향으로 통화 긴축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달러 강세로 대표되는 외환시장 여건 역시도 각국의 금리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하지만 연준이 일종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며 정책금리 인상의 폭이나 강도를 조절함에 따라 다른 국가들 역시 자신들의 매크로 환경에 부합하는 통화정책 경로로 복귀하고 있다.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 & 채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