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채한도 협상안에 서명하며 미국의 디폴트 우려가 해소됐다. 이번 협상안이 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부채한도 적용이 유예됐다는 점에서 구축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구축효과란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릴 경우, 민간에서 빌릴 수 있는 자금이 줄어 민간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부채한도 증액은 결국 미국 정부가 재정증권을 발행해 재정정책을 위한 자금 마련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족한 세수 충당과 재정정책 운용을 위해 재정증권을 발행하는 과정은 구축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전통적으로 정부가 재정증권을 발행할 경우, 머니마켓펀드(MMF)라는 단기금융펀드로부터 자금이 유입되었다. 머니마켓펀드 자금들이 재정증권의 주 고객인 셈이다. 현재 머니마켓펀드 자금의 많은 부분은 주로 정부 역레포(RRP·Reverse Repo) 계정에 유입되어 있다. 역레포는 시중 금융기관이 연방준비제도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경우를 말하는데, 정책금리가 높은 현재 역레포는 높은 이자와 안정성을 제공하는 매력적 투자처다. 따라서 머니마켓펀드가 역레포에 예치된 돈을 바탕으로 정부 재정증권에 투자할 개연성이 높은데, 이 경우 시중의 유동성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준에 빌려주었던 돈을 빼서 다시 정부에 투자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재정증권 발행 수요처가 대부분 머니마켓펀드이고, 이들이 역레포에서 돈을 인출해 재정증권을 매수할 경우 구축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반대로 머니마켓펀드가 아닌 외국인 투자자나 개인들이 재정증권을 매수할 경우 구축효과는 커질 수 있다. 이들은 상업은행 예금에 존재하는 본인들의 자금을 인출해 재정증권을 매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업은행 예금에서 정부로 자금이 이동하게 된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 은행 시스템 우려의 근본적 원인은 지급준비금 부족이었다. 재정증권 발행이 상업은행 예금을 위축시키는 모습으로 귀결될 경우 구축효과에 따른 경기 위축세는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지난해 4분기까지 일반가계의 미국 국채 투자비율이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 왔다는 점도 유동성 우려를 한층 고조시킨다.
따라서 정부가 본격적으로 재정증권을 발행할 경우, 이를 누가 매수할 것인지에 따라 시장의 유동성 위축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연계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6월 회의는 13∼14일로 예정돼 있다. 현재는 연준 인사들의 금리 동결 시사 발언에 약 75%의 확률로 동결이 예상되고 있다. 다만 이번 동결이 잠시 금리 인상을 건너뛰는 것인지, 아니면 인상을 아예 중단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만약 재정증권 발행이 시중은행 예금 축소를 매개로 시장 유동성을 빠르게 축소시킨다면 6월 금리 동결은 ‘중단’(Pause)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불안으로 올해 미국 정책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심리가 확산될 수 있어서다. 이미 미국에서는 은행 시스템 불안 상황을 겪으며 경기 침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머니마켓펀드 자금이 재정증권 발행에 대거 사용돼 유동성 관련 상황이 잠잠할 경우 6월 금리 동결은 ‘건너뜀’(Skip)으로 평가받을 확률이 높다. 유동성 우려가 배제된 지금의 미국 경제는 고용이 여전히 견고하고 서비스 물가 수준 역시 높아 긴축 필요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만약 재정증권 발행이 6월 이후에 이뤄진다면, 위 논리는 7월 25∼26일에 예정된 회의에 적용될 것이다. 재정증권 발행 시점과 수요 주체에 따른 구축효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 등을 연계해 경제 상황을 바라볼 때다.
NH선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