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경영대학교 엘지·포스코 경영관에서 김우찬 교수(경제개혁연대·경제개혁연구소 소장)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면, 직접 인사에 개입하는 대신 주주를 통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우찬(56) 경제개혁연대·경제개혁연구소 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케이티(KT)·우리금융 등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윤 정부의 인사개입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주주들이 해결하는 것을 막고, 국민연금과 검찰 수사를 앞세워 개입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비정상적”이라면서 주주대표소송 활성화, 주주행동주의 펀드 활성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 도입을 정책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 김 소장은 “국민연금이 재원 고갈을 걱정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주주대표소송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국민연금이 직접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주주 행동주의 펀드에 돈을 맡겨서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위법행위로 손실을 끼친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지 않을 경우 소수주주들이 대신 제기하는 소송으로 대주주나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주주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독립적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선임 요구 등 기업지배구조나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펀드를 말한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기후·사회책임·지배구조를 강조하는 이에스지(ESG) 관련 이슈처럼 상법상 정해진 사안은 아니더라도 주총에 제안하는 것으로서, 결의가 되더라도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김우찬 소장은 국내 대표적인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꼽힌다. 경제민주화, 기업지배구조,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경제전문단체인 경제개혁연대와 자매기관인 경제개혁연구소의 소장을 겸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윤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경제민주화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김 소장의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경영대 연구실에서의 직접 만남과 28일 추가 전화통화로 이뤄졌다.
‘윤 정부 1년’ 경제민주화 성적은 낙제점…재벌개혁은 0점
―경제개혁연구소의 국민의식 조사에서 “재벌개혁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61%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윤 정부 1년 동안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관련 의제는 사실상 실종됐는데.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은 당연히 있다. 그런데도 논의가 안되는 것은 정부가 재벌의 경제적 집중에 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벌 규제는 전반적으로 완화되고 있다. 경제관련법 위반에 대한 형벌을 과징금으로 전환하고,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주회사 부서를 없앴고, 올해 공정위 업무보고에서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받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범위 축소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이행평가를 해왔다. 윤 정부의 성적은 어떤가?
“경제민주화에는 기업지배구조 개혁, 자본시장 개혁, 소상공인 보호 등을 포괄한다. 박근혜 정부는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30점대였고, 문재인 정부는 50점대였다. 윤 정부는 경제민주화 공약이 거의 없어서, 이행평가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굳이 점수를 부여하자면 30점대로 낙제점 수준이다. 재벌개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후퇴시켰으니 당연히 ‘0점’이다. 지배구조 개혁에서도 케이티와 우리금융의 인사에 개입하고, 국민연금까지 동원한 것을 고려할 때 오히려 마이너스 점수를 줘야 한다. 그나마 자본시장 개혁에서 일부 진전이 있었다.”
―윤 정부는 자본시장 분야에서 공약한 기업 물적분할 관련 주주보호, 불법 공매도 근절 등은 금융감독당국 규정이나 시행령 개정으로 이행했다. 하지만 법개정이 필요한 불공정행위 제재의 실효성 제고, 내부자 주식거래 때 사전공시, 주식양수도에 의한 경영권 변경 때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은 아직 진전이 없다.
“법개정 과제들은 문재인 정부도 하지 못한 것으로 ‘자본시장 개혁 3법’으로 부를만하다. 윤 정부는 내용이 너무 개혁적이어서 정부입법으로는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럼 국민의힘이 의원입법으로 나서줘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개혁에 관심이 없다.”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닌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국내 주식투자 인구가 1300만~1400만명으로 늘어났다. 2012년 대선에서는 가장 중요한 공약이 경제민주화였는데, 2022년 대선 때는 경제 분야에서 자본시장 개혁이었다. 유권자인 주식 투자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자본시장 포퓰리즘이 매우 팽배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거의 똑같은 공약을 내놨다. 만약 올해 안에 입법화가 안되면, 내년 총선에서 주식 투자자들이 ‘정부여당이 한 게 뭐냐’는 불만이 나올 것이다.”
윤 정부 KT·우리금융 인사 개입에…“지배구조 후퇴시키는 ‘비정상’ ”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경제민주화의 핵심 분야인데, 최근 케이티 사태가 발생했다. 경영진의 ‘이권 카르텔’ 구축이 비판을 받았는데.
“기본적으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는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다.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들이 거의 99%이고, 가족의 대표인 총수 중심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총수에 이익이 되면 일반주주의 이익과 배치돼도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중에는 금융지주회사와 과거 국영기업에서 민영화된 케이티, 포스코, 케이티앤지(KT&G) 같은 소유분산 기업이 있다. 여기는 임원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임원 중심의 지배구조가 문제다. 결국 가족 지배기업이나 임원 지배기업 모두 진짜 주인인 전체 주주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동일하다.”
―구현모 전 케이티 대표는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 쪼개기 후원을 했다가 정치자금법으로 벌금형까지 선고받았는데, 연임 욕심을 냈다. 윤 정부가 이를 빌미로 무리하게 인사개입을 했다가 최악의 경영공백 사태가 빚어졌다.
“케이티 지배구조의 문제점은 당연히 개선해야 하지만, 정부가 왜 직접 개입하나? 윤 정부가 정말로 시장경제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면, 직접 개입하지 말고 주주를 통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의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까지 직접 케이티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례적이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소유분산 기업의 임원들을 모두 물갈이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거나, 대선 때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 낙하산 인사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샀다.”
―윤 정부는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만 문제 삼고, 총수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안한다. 최근 한국타이어 조현범 회장이 부당지원 및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되고, 대법원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주대표소송에서 현정은 회장에게 1700억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등 재벌 지배구조의 문제점이 재차 드러났는데.
“총수 지배 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여전한 현실에서 윤 정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검찰이 수사한다고 하지만, 그건 사후적이고,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논의는 전혀 안한다. 검찰이 선택적으로 기업 총수를 압수수색하고, 기소해서, 감옥에 집어넣은 뒤 사면을 시켜주니 오히려 정경유착만 심해진다.”
―윤 정부는 우리금융지주 인사에도 개입해, 관치 논란을 자초했다,
“금융은 규제산업이고 공공적인 목적을 이행하는 부분이 있다. 정부는 이를 인사개입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시장 참여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금융지주의 손태승 전 회장은 디엘에프(DLF)와 라임펀드 부실사태로 소비자와 우리은행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제재도 받았는데 연임을 강행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배구조의 핵심은 책임경영이다. 불법을 저지르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손 전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엄청난 금액의 손해를 우리은행에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푼도 배상을 한 게 없다. 오히려 지난 3년 동안 수십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후임인 임종룡 회장은 당연히 손해배상 소송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기획연대가 수차례 요청했는데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손 전 회장이 배상하면 우리은행에 귀속된다. 임 회장이 소송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러다보니 정부는 관료 출신인 임 회장의 선임을 지배구조 개선으로 포장하지만, 국민은 낙하산으로 본다.”
―손 전 회장은 금융감독당국 상대로 한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는데?
“그건 행정벌이고, 민사적으로는 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또 행정소송에서도 내부통제 시스템은 마련했지만,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실제 내부통제가 매우 부실했고, 경영진이 감독의무를 소홀히 한 게 확인됐다.”
―케이티 경영진의 경영책임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케이티 대표가 새로 선임되면 구현모 전 대표를 상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구 전 대표는 공금 횡령과 쪼개기 후원과 관련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아, 회사에 큰 손실을 끼쳤다) 그런데 정부는 민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검찰 수사를 앞세워 겁주는 방식을 동원했다.”
지난 4월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경영대학교 엘지·포스코 경영관에서 김우찬 교수(경제개혁연대·경제개혁연구소 소장)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주주대표소송’ 지분요건 낮춰 KT·우리금융 전 경영진 책임 물어야
―주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이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상법 개정을 통해 자회사의 이사가 위법행위로 손해를 끼쳤음에도 모회사가 책임 추궁을 하지 않는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다중대표소송도 도입됐다.
“대법원이 현정은 회장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인정한 당일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폭등했다. 주주대표소송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회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입증됐다. 케이티는 상장회사니까 통상적인 주주대표 소송을 하면 되는데 앞에 나서는 기관투자자가 없다. 국민연금도 눈치를 보면서 할 생각이 없다. 소수주주는 소송 요건인 0.01%의 지분(4월28일 기준 7억8천만원)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 우리은행은 모기업인 우리금융지주의 주주가 다중대표소송을 해야 한다. 하지만 소송 요건이 0.5%(430억원)로 더 높아, 사실상 소송이 어렵다. 소송 요건을 더 낮춰야 한다.”
―국민연금은 문재인 정부 시절 스튜어드십코드를 강조했지만, 지금까지 한건도 주주대표소송을 안했다.
“국민연금은 소송 결정권을 기금운용본부가 가질 것인지, 수탁자전문위원회가 가질 것인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면서 2년의 시간만 낭비했다. 지금이라도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윤 정부에서는 가능성이 없다. 주주대표소송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다. 국민연금의 재원 고갈을 걱정하면서 소송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행동주의펀드’ 주주 구심점으로…선진국 연기금은 펀드 적극 활용
―올해 주총의 특징은 주주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해진 것이다.
“국민연금과 일반주주의 주주대표소송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대하는 것이 행동주의 펀드들이다. 이들 펀드가 주주대표소송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기업의 소유가 분산돼 있으면 주주들이 나서지 않으려 한다. 이때 구심점이 되는 게 행동주의 펀드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주주 행동주의 펀드가 아직 약한데.
“외국은 대형 연기금들이 행동주의 펀드에 돈을 맡기면, 펀드가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전적으로 행사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에 자금을 맡기더라도, 위탁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허락이 없으면 주주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주주대표소송을 허락한 적이 없다.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에 돈을 맡기면, 주주 행동주의가 보다 활성화할 수 있다. 미국은 S&P500에 속한 기업의 대부분에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가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라 주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민연금은 못한다는 게 증명됐다. 2001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가장 먼저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연금으로는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국민연금보다 잘할 수 있는 주주 행동주의 펀드에 맡겨서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에서도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이다.”
미국처럼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을…ESG·산업안전 계획수립 요청 가능
―경제개혁연대도 적극적으로 주주제안을 해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지난해 현대산업개발 주총에서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표 안건은 회사가 수용해서 정관개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에스지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은 회사가 받지 않아서 부결됐다. 하지만 지배주주와 우호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 중에서는 97%가 권고적 주주제안에 찬성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기존 주주제안 제도는 안건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지만, 권고적 주주제안은 구체적인 사안을 다룰 수 있다. 일 예로 포스코의 경우 탄소배출 감축과 작업장 안전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권고적 주주제안은 가결되더라도 구속력은 없지만, 예들 들어 주주의 80%가 찬성하면 무시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도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안건은 대부분 이행된다. 소유분산 기업에 대해서는 주주대표소송 활성화, 주주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와 함께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가 필요하다. 상법으로 도입하면 모든 회사가 정관개정과 상관없이 권고적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올해는 케이티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했는데.
“애초 이에스지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을 도입하는 정관개정을 제시했다. 또 정관개정이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현대자동차그룹과 자사주를 맞교환해서 가진 상호주의 취득 목적, 향후 회수계획을 자율공시할 것을 권고하려고 했다. 협상과정에서 케이티가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철회하면 자사주와 관련된 정관 개정안을 모두 받겠다고 해서 수용했다.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가 도입되면 윤 정부가 개입할 필요 없이 주주들이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게임의 규칙을 마련하지 않고, 정부가 다 하려 하고, 그러다가 안 되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오히려 지배구조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무리한 연임 시도 때문에 최고경영자 승계시스템이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소유가 분산된 미국형 회사는 당연히 내부 승계가 원칙이다. 회사가 망할 수준이 아니면 정상적인 회사는 당연히 내부 승진을 하는 게 맞다. 우리나라에서 최고경영자는 자주 갈아치워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케이티 구현모 대표나 우리금융 손태승 회장이 잘했으면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승계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보고서를 보면 승계계획이 있다고 돼있지만, 다 형식적이다. 제대로 된 승계시스템을 만들어서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동안 이사회의 지배구조 개선의 대안으로 제시된 사외이사제가 경영진 감시·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외이사는 가장 중요한 미션이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되어 감독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영진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 결국 소수주주나 행동주의 펀드가 추천한 후보가 사외이사로 들어가야 한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기관투자자, 소수주주와 힘을 합쳐 대주주인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에 대해 독립성이 있는 감사를 선임하는데 성공했다.”
―국민연금의 케이티 사태 개입에 대해 보수언론조차 ‘연금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권력의 압력을 받아 부당하게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가 처벌받은 일을 망각한 듯하다. 국민연금 개혁 방안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르면 오로지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가입자인 국민의 이익이 충돌할 때 정치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정부 개입으로 국민연금이 투자한 케이티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가입자들이 손해를 봤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한 것은 경제단체와 노조 등 가입자단체가 추천한 사람들이 기금운용위원회나 수탁자전문위원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단체와 노조는 본인들이 직접 국민연금에 들어오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추천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자산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를 아예 분리하는 방안은?
“기금운용본부를 따로 떼어내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가칭)를 만들자는 얘기는 나온지 20년이 됐다. 여기에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우선 공사를 보건복지부에서 떼어내 기획재정부가 가져가려는 것은 절대 안된다. 국민연금이 원래 재정경제원(기재부 전신) 산하에 있었는데, 예산이 부족하면 국민연금의 돈을 마구 가져다 썼다. 세계은행이 외환위기 때 지원 조건으로 보건복지부로 넘기도록 했다. 기재부가 다시 공사를 가져가면 경제위기 때마다 국민연금의 몇백조가 한꺼번에 날아갈 수 있다. 다음은 공사가 되면 운영위원회와 이사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운영위원들을 기재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는 사람들로 임명하면 독립성이 사라진다. 운영위원은 가입자단체가 전문가들을 추천해서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스지 경영 확산이 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미친다고 보나?
“이에스지 경영을 강조하는 에스케이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부터 지배구조 개혁에 나섰다. 계열사 사장들을 이사회가 제대로 감독하라는 것이다. 회장 본인을 견제하는 지배구조는 아니지만, 이에스지가 강조되면서 지배구조 개선에 훈풍이 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민수빈 보조연구원
모피아 출신으로 관치 비판하는 경제민주화운동 학자
김우찬 소장은 누구?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대학교수와 경제민주화 전문단체의 책임자로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김 교수는 처음 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공직과 공부를 병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에서 5년 만에 정책학 박사 학위를 따고 1999년 귀국한 뒤 공직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우리나라 정부 부처는 어떤 독립적인 생각을 하고 그것을 피력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조직의 논리가 우선하고, 합리적인 토론과 사고, 개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원천차단돼 있다. 사무관·과장·국장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공이 없고, 일을 잘못해도 욕을 먹지 않는다. 장관만 칭찬받고 욕을 먹는다. 전혀 동기부여가 안 생기는 조직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공직사회가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 회의는 더욱 커졌다. 때마침 아이티(IT) 열풍이 불면서 공직사회에 퇴직 러쉬가 일어나기도 했다.
공직자들은 전관예우가 관행적으로 따라다니지만, 김 소장은 예외다. 2000년 퇴직 이후 24년간 기재부·금융위 등 친정 산하 정부위원회의 위원을 단 한번도 맡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제가 워낙 적대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쪽에서도 저를 불러주지 않고 저도 자리를 요청한 적이 없었다.” 정통 모피아(금융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이지만, 관치를 감시하고 비판해온 ‘이단아’의 숙명이라고 할까?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