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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ESG 채권 늘었다? 수요도, 공급도 아직은 ‘냉랭’

등록 2023-05-01 09:00수정 2023-05-01 09:07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스지(ESG) 채권이 돌아온 것일까. 지난해 말 주춤했던 이에스지 채권 발행량이 올해 1분기 들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스지 채권은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기업의 사회책임투자와 관련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발행되는 채권이다. 지난 2∼3년 동안 자본시장에서 이에스지는 ‘열풍’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주목받은 주제였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고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 자체가 위축되는 가운데 이에스지를 향한 관심도 식은 상황이었다. 높은 금리 및 경기 둔화라는 거시경제 여건 속에서 1분기 이에스지 채권 숫자를 뜯어보면 본래 이에스지 투자가 주목받았던 취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멀리서 보면 돌아온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은 셈이다.

채권은 시장의 자금 흐름을 반영한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 전반이 차갑게 얼어붙으면서 이에스지 채권 발행량은 지난해 12월 6540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엔 뚜렷한 증가세로 돌아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이에스지 채권 발행은 전달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늘었다. 이에스지 채권 발행량은 1월 1조8520억원에서 2월 4조1620억원, 3월 8조4940억원으로 증가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 조달에도 다시 훈풍이 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 18일 보고서에서 “올해 들어서 국내 이에스지 채권 발행이 증가하는 모습”이라며 “올해 이에스지 채권에 대한 관심도는 재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총량 늘었지만…사회적 채권 압도적

총량은 늘고 있지만, 이에스지 채권을 녹색채권(E)·사회적 채권(S)·지속가능채권(G)으로 하나씩 떼어 보면 유독 사회적 채권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지난달 전체 이에스지 채권 발행량(8조4940억원) 가운데 7조8740억원이 사회적 채권이었다. 92.7%에 달한다. 사회적 채권의 비중은 지난 1월과 2월에도 각각 94.6%와 86.6%로 압도적이었다. 그 사이 녹색채권과 지속가능채권은 전체 발행량만큼의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못했다. 녹색채권 발행량은 1월 1천억원, 2월 4천억원, 3월 6천억원 수준이었고, 지속가능채권의 경우 1월엔 발행된 것이 없었고 2월 1500억원, 3월 200억원으로 미미했다.

시계열을 넓혀 보면 사회적 채권 쏠림 현상이 최근 강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전체 이에스지 채권 발행량(86조9660억원) 가운데 사회적 채권의 비중은 71.1%(61조8430억원)였고, 지난해에는 전체 발행량 58조8520억원 가운데 사회적 채권이 78.9%(46조4550억원)를 차지했다.

한국거래소는 사회적 채권을 ‘사회가치 창출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라고 소개한다. 구체적으로 주택공급이나 중소기업 지원 등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가리킨다. 지난달 사회적 채권 발행량의 상당수는 주택금융공사 채권(5조7099억원)이 차지했다. 여기에는 주택금융공사가 특례보금자리론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주택저당증권(MBS)이 포함된다. 올해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의 수요가 높았던 만큼 자연스럽게 주택저당증권 발행이 늘고 사회적채권 발행량도 덩달아 증가한 것이다. 주택금융공사를 포함해 공공기관에서 찍어내는 이에스지 채권이 늘었지만, 일반기업 회사채 중에 이에스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1분기 중에는 포스코퓨처엠, 한화, 현대캐피탈, 비엔케이(BNK)캐피탈 등이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일부 기업은 녹색채권 발행에 나섰지만 수요가 충분치 않아 일반 회사채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굳이 이에스지 채권 찍을 이유 없다”

일반 기업에서 여전히 이에스지 채권 주목도가 높지 않은 까닭은 기본적으로 자금 조달이 까다로워진 시장 환경이 있다. 이에스지 채권의 경우 일반 회사채보다 발행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이에스지 열풍이 불면서 겉으로는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자금 쓰임새가 이에스지 요소와 멀어지는 경우를 막기 위해, 이에스지 채권을 발행하려면 신용평가사 등으로부터 검토를 받아야 한다. 채권을 찍은 후에도 ‘조달 자금을 정말로 이에스지 목적으로 썼는지’ 사후 평가를 받아야 해 기업 입장에선 손이 많이 가는 부담을 안게 된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대비 금리 수준이 올라왔고 경기 전망에도 부정적 시선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에스지와 관련해 신규 투자를 집행하고 돈을 조달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2020년에는 이에스지 열풍이 있다 보니 같은 회사가 찍은 일반 회사채보다 이에스지 채권이 메리트가 있었지만, 이제는 일반 회사채도 발행 시장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에스지는 절차도 일반 채권보다 복잡해 기업들이 굳이 이에스지 채권을 발행할 유인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스지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리도 다소 냉랭해졌다. 여기에는 향후 경기 전망뿐 아니라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 변화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기관투자회사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는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면서 이에스지가 일종의 투자 ‘테마’가 됐는데 이제는 특별한 유인이 없다. 이에스지 투자가 유행할 때는 채권뿐 아니라 관련 주식 등도 담았지만 유난히 실적이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여러모로 이제는 잘 살펴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큰 손’인 국민연금도 지난 정부에서는 책임투자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었지만, 이후 구체적인 실행 전략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사실 이에스지 채권의 인기가 식은 건 우리나라 상황만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이에스지 투자를 선도해온 유럽도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에너지 수급 우려도 커지면서 무기나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현대차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이에스지 채권은 8207억달러어치가 발행돼 2021년(1조1375억달러)보다 27.9% 감소했다. 2007년부터 이에스지 채권이 발행된 후 발행량이 감소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은 기대 요소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환경부가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이에스지 채권 시장이 반등할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 가이드라인은 녹색채권의 정의 및 ‘위장 환경주의’(그린워싱)를 막기 위한 조치 등을 담고 있다. 이에스지 투자의 걸림돌 중 하나는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개념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인데, 개정을 통해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면서 향후 이에 맞춰 녹색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진행된 녹색채권 발행은 ‘한국형 녹색채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는 의미도 있다. 한화의 경우 1000억원 모집에 주문이 7050억원어치나 몰리며 흥행하기도 했다. 지속가능채권은 녹색채권과 사회적 채권의 특징이 결합된 형태로 정의되는데, 그 정의가 모호한 만큼 녹색채권에 비해서도 올해 들어 발행이 미진한 편이다.

이에스지 채권이 이전처럼 주목받으려면 금리 변동성 같은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걷히고, 녹색채권처럼 사회적 채권과 지속가능채권에서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설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혜진 연구원은 “거시경제 환경 속에서 이에스지 시장은 아직 동면 중이지만 금리 안정화와 함께 이에스지 채권에 대한 발행·투자 수요는 재부상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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