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지난 18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하던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전세사기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피해 임차인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등 공공기관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마련하기로 함에 따라, 피해자 주거 안정을 위한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다만 공공 매입임대 예산 확대와 피해자 보증금 회수 문제 등 몇가지 쟁점이 남아 있어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여야 간 공방이 예상된다.
23일 당정이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구상을 보면, 앞으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는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 위한 두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먼저 직접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경매에서 낙찰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저리의 대출 지원을 받아 부족한 낙찰 대금을 충당할 수 있다. 집을 매입할 의사나 여유가 없는 경우엔 엘에이치 등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이 집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받아 계속 거주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엘에이치 매입임대주택은 최장 20년 거주할 수 있고 보증금은 시세의 30~50% 수준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피해자의 주거 안정이 확보되는 만큼, 특별법이 시행되면 20일부터 한시적으로 중단된 경매 절차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왼쪽 두번째)이 2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당·정 전세사기대책 협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엘에이치가 매수에 나설 피해 주택의 세부 기준은 국토교통부에 설치될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기존에 엘에이치에서 운영하는 매입임대 사업 기준을 일부 보완하면 충분히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에 견줘 3조원 넘게 삭감된 공공 매입임대 예산을 늘려 잡지는 않을 계획이어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려면 기존 취약계층에 돌아갈 매입임대 물량은 줄이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올해 엘에이치는 매입임대 예산 5조5천억원을 활용해 2만6천여호를 매입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대상이 되는 일반 매입임대용 5504호, 다자녀 신혼부부용 7539호, 고령자용 2천호, 저소득 청년 기숙사용 1만1418호를 각각 매입할 예정이었다. 엘에이치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계획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지역별·유형별 매입 물량 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올해 매입임대 예산은 3조797억원이나 삭감해놓고, 제도 대상자는 계속 늘리고만 있어 약자 간 경쟁이 심화하는 양상”이라며 “매입임대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반지하 등 비정상거처 거주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매입임대·전세임대) 우선 공급 비중을 현재 15%에서 30%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8월8일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배수작업. 연합뉴스
또 정부·여당은 피해자가 당장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야당과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일부나마 회수할 방안도 특별법에 담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이 피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한 뒤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낙찰받아 엘에이치 등 공공주택 사업자나 민간에 매각해 비용을 회수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원희룡 장관은 이에 대해 “사기당해서 떼인 돈을 국민 세금으로 대납해서 반환하는 것을 과연 국민들이 동의하겠느냐”며 “정부·여당안은 추가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보증금 채권 매입 방안을 거부한 당정 협의회 결과에 매우 실망스럽다”며 “전세사기는 정부의 지속적인 대출 확대와 묻지마 보증 등 정부 책임도 분명한 만큼, 정부가 고통을 분담하고 범죄수익 환수로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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