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시각) 유동성 부족과 지급불능 위기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가운데 한국 정부도 은행 추가 인가 등 경쟁 촉진 방안 추진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의 은행권 과점체제 해소 관련 회의에서는 해외 참고 사례로 실리콘밸리은행이 언급된 바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운영하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참고할만한 해외 사례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3일 회의 자료를 보면, 주요국 특화은행 허용 사례를 언급하며 실리콘밸리은행에 대해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금융당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 과점체제 해소를 주문하자 신규 플레이어 진입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의에서는 ‘스몰라이센스’, ‘챌린져뱅크’ 등 업무 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 설립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로 금융당국 논의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충분한 건전성 규제를 담보하지 않고 은행 추가 인가를 고려하는 것이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 논의 과정에서는 특정 부문의 여신에만 집중하는 은행은 해당 부문의 자산건전성 충격을 다른 부문의 여신을 통해 흡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자본 적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는 “일반 은행은 기업대출, 가계대출 등 대출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시스템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며 “특정 부문이 문제가 되면 다른 부문을 통한 대손충당금으로 메꾸면 되는데, 특화은행은 한 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에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할 때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도 “은행업 특성상 혁신이나 수익성보다는 금융 안정성에 훨씬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며 “스몰라이센스와 같은 은행업 라이센스를 금융 안정성을 담보하지 않고 신규로 내주는 것에 대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실리콘밸리은행은 고금리로 인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기 채권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파산으로 이어진 사례이기 때문에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여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 논의에서) 소규모 특화은행을 배제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은행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제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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