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 비가 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앞으로 반지하 주택 신축이 원칙적으로 불허된다. 기존 반지하 주택은 공공이 매입해 리모델링 등을 거쳐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거나, 민간 정비사업이 점진적으로 추진되도록 유도한다. 정부가 도시계획을 세울 때 수행하는 재해취약성 분석은 실효성 있게 개선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22일 예측하기 어려운 극한 기후 현상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도시·주택 재해 대응력 강화 방안’을 내놨다. 지난해 8월 폭우로 서울 신림동 등에서 반지하 주택 침수 참사가 발생한 지 약 반년 만에 나온 종합 대책이다. 지난해 정부는 ‘8·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연말까지 재해 취약주택과 거주자를 실태조사 등으로 심층 분석한 뒤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수도권에서 지하층에 거주하는 가구는 34만8천가구로 파악됐다. 수도권에서 지하층에 사는 3천가구를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에서는 지하 주택의 주거 환경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주거 비용이 저렴한 까닭에 계속 거주하고자 하는 수요가 적지 않다는 점이 파악됐다. 이에 따라 지하주택 신축은 원칙적으로 인·허가를 내주지 않되, 기존 반지하 주택은 점진적·단계적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지하 주택 건축 불허·기존 반지하 주택 20년에 걸쳐 퇴출’ 방안을 발표하자, 이는 반지하 거주 가구의 주거 불안을 키우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며 각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종합대책에는 오 시장의 ‘반지하 주택 불허’ 방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는 반지하 주택이 원칙적 허용, 예외적 불허였다면 앞으로는 원칙적 불허, 예외적 허용으로 큰 방향이 바뀌는 것”이라며 “침수 위험이 없는 고지대 등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판단해 조례 등으로 허용할 수 있게 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에 대해서도 20년이라는 퇴출 시간을 못박지 않고 주민 의사에 따라 점진적으로 정비를 유도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비는 공공과 민간 모두 나설 수 있게 한다. 공공의 경우 반지하 주택을 매입한 뒤 상층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쓰고, 지하층은 커뮤니티 공간 등 비주거 용도로 활용하는 리모델링을 추진한다. 거주자들이 동의한다면 공공이 신축매입약정을 체결해 반지하 주택을 철거하고 신축 주택으로 재건축한 뒤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신축매입약정 임대주택을 재건축할 때 용적률을 120%로 완화하는 국토계획법 시행령 개정이 추진 중이다.
반지하 밀집지역의 주택 정비사업(재개발·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소규모정비관리지역)이 활성화되도록 정비구역 지정 요건에 ‘반지하 주택이 2분의 1 이상인 경우’를 추가하기로도 했다. 현재는 노후 동수가 3분의 2 이상인 경우 등에 한해 재개발이 추진될 수 있지만, 개편 뒤에는 노후 동수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도 반지하 주택이 2분의 1 이상이면 재개발 추진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용적률 규제도 완화할 방침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신림동 등 일부 지역에서 현재는 재개발이 불가능하지만 개편 뒤엔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는 제도적으로 추진 가능성을 더 열어주는 것일 뿐 실제 재개발 여부는 반지하 거구 가구 등 주민 의사에 달렸다”고 말했다.
반지하나 쪽방 등 비정상 거처에 대한 공공임대주택(매입입대·전세입대) 우선 공급 비중은 15%에서 30%로 상향된다.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주를 희망할 경우에는 최대 5천만원의 보증금 무이자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지원 대상 가구수 목표는 공공임대로 연 1만호, 민간으로 5천호라고 밝혔다.
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재해취약성 분석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대책을 함께 세우도록 관련 제도도 바꾼다. 현재도 도시계획 내용에 재해취약성 분석 결과를 반영한 방재계획을 담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선언적 내용만 반영됐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앞으로는 분석 결과를 보고 취약 등급별, 재해 유형별 차등화된 토지·기반시설·건축물별 대책이 구체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이원재 국토부 1차관은 “재해 취약가구 거주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재해 예방형 도시계획, 시설기준 강화, 주거환경 정비, 스마트도시 기술 접목 등 가능한 수단의 총결집을 통해 도시·주택 전반의 재해대응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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