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21일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 대책’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에서는 관행적 임금으로 굳어진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의 면허를 빼앗거나,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을 제재하겠다는 내용 등이 뼈대다.
그러나 정부가 문제 삼은 노동자들의 ‘불법·부당행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공사기간 단축과 비용 최소화란 목표 때문에 일상적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놓인 노동자들이 찾아낸 자구책 성격이 강하다. 정부가 ‘법·제도 밖 자구책’이 필요하지 않도록 충분한 보호에 나서거나 노사 갈등을 중재하기보다는 ‘노동자 처벌 만능주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 등을 적용하겠다는 대책이다. 정부는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를 조종하는 노동자가 부당한 금품을 요구하면 면허 취소를 할 수 있도록 건설기계법에 근거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입법 조처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월례비 수수를 국가기술자격법상 성실 또는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해석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대 1년 면허 정지 조처를 할 방침이다. 면허 정지 조처는 계도기간을 거친 뒤 오는 3월부터 시행된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조종기사가 건설 현장 내 여러 하도급 업체로부터 받는 일종의 수고비다. 애초 타워크레인 조종기사의 고용주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업무를 지시하는 쪽은 하도급 업체들이란 데서 기인했다. 현장에서는 월례비 지급·수수를 당연히 전제하고 고용주는 적은 임금을 주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오랫동안 ‘임금’으로 굳어진 결과, 최근 광주고등법원에서는 “관례적으로 지급되어온 월례비는 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고법 판결은) 이미 지급된 돈에 대해 반환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다룬 법원 판결일 뿐”이라며 “앞으로는 (법으로) 다 금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월례비가 ‘공사기간 단축’을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들이 먼저 제시하는 수고비 성격도 있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상당수 하도급 업체들은 월례비를 주는 대신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로 작업을 요청하거나, 조종사의 휴게시간에도 일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은규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 법규부장은 “월례비를 안 받을 테니 안전수칙을 지켜 작업하자는 게 우리 요구”라며 “그런데 안천수칙을 제대로 지키면서 하면 지금까지 1년에 하던 일을 앞으로는 3년간 하게 될 텐데, 그들(건설사들)이 그렇게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연합뉴스
정부는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에도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 등을 적용하고, 채용절차법상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정부는 “공정한 채용 질서 확립을 위해 채용 강요에 대한 제재 수준을 현행 과태료에서 형벌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책 역시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중간착취가 만연한 건설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최우선 과제는 구직자 조합원의 “고용안정”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무시한 조처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노조 쪽은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원청 건설사가 전문 건설업체와 1단계 하도급 계약을 하는 것까지만 가능하고, 전문 건설업체는 노동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전문 건설업체가 다른 건설업체들에 재하도급을 하고, 이 과정에서 중간착취와 임금 체불이 상시적으로 벌어진다. 무법천지인 건설 현장에서 노동조합이 직접 채용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이라고 강조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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