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연이어 시장금리 하락세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나섰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통화긴축의 물가안정 효과가 훼손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국은행도 시장금리 내림세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소통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회의
지난달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을 보면, 위원들은 지난해 10월 이후 장기 시장금리가 떨어진 데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최근 수개월간 정책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채권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한 바 있다. 위원회는 “(이는) 반갑지 않은 변화”라며 “(시장금리의) 내림세를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 통화당국도 시장금리 하락세를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는 같은 달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융시장 여건의 부적절한 완화는 물가 안정을 회복하려는 연준의 노력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짚은 바 있다.
이는 통화긴축이 물가를 끌어내리는 주된 경로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적으로 정책금리가 인상되면 각종 예금·대출 금리가 따라 오르면서 소비와 투자가 제약돼 물가가 안정되는 효과가 난다. 지금처럼 장기 시장금리가 오히려 하락하면 통화긴축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물가를 안정시키기 한층 힘들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이후 국고채 금리가 내림세를 이어가며 대체로 기준금리(연 3.50%)를 밑돌고 있는 탓이다. 이달에는 금융당국의 압박까지 더해져 은행권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도 우려를 더하는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그린스펀의 수수께끼’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는 2004∼2006년 연준이 정책금리를 올리는 동안에도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떨어지거나 소폭 오르는 데 그친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2005년 2월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채권시장의 예상 밖 움직임(장기 금리 하락세)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시장금리 하향세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금리가 떨어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시장금리의 하락세는 정책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이끌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지만, 다른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리스크 프리미엄의 하락 등 여러 요인을 후보로 거론한 바 있다.
통화당국의 소통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중앙은행이 매파적인 메시지를 보내도 시장은 반대로 해석해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탓이다. 유럽중앙은행 정책위는 “정책금리 경로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상향 조정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소통이 요구된다”고 짚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