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첫 출근일인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시민들이 각자 자신의 일터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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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란 무엇일까? 더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란 무엇일까? 이렇게 추상적인 말을 정량적으로 설명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란 639조원을 8516개 사업을 통해 지출하는 정치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즉, 639조원을 어디에, 어떻게, 왜 쓰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2023년 대한민국의 정체를 파악해보자.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639조원을 지출한다면 많이 쓰는 것일까, 적게 쓰는 것일까. 금액이 너무 커서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돈을 쓰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5200만명을 위해서다. 국민 1인당 행정서비스는 약 1200만원이다. 4인 가족이라면 4800만원의 행정서비스를 중앙정부로부터 매년 받고 있다. 물론 우리가 체감하기 어려운 국방, 치안, 사회간접자본(SOC)도 다 포함된 수치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생각보다 중앙정부가 돈을 제법 많이 쓴다는 느낌이다. 둘째는 “저 많은 돈을 누구에게 다 쓰는 거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639조원은 우리나라 정부 전체 지출액이 아니다. 중앙정부 지출액만 그렇다. 지방정부 지출액이나 건강보험공단처럼 사실상 국가나 마찬가지인 비영리 공공기관 지출액까지 합하면 800조원을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 지디피(GDP·국내총생산)는 약 2200조원이다. 결국 우리나라 국가 전체(중앙·지방정부, 비영리 공공기관 지출)가 지출하는 규모는 지디피의 약 38% 이상이다. 지디피의 38%가 넘는 돈을 국가가 지출한다고 하니 두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생각보다 우리나라 정부가 돈을 엄청나게 많이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둘째는 “아니 지디피의 38%에 이르는 돈을 정부가 쓰면 이러다 망하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새어나온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쓰는 나라일까?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와 비교해 보자. 지디피 대비 우리나라 정부 지출 규모는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다. 우리나라보다 더 적은 나라는 콜롬비아(37.2%), 코스타리카(34.4%), 아일랜드(27.4%) 등 세 나라에 불과하다. 비슷한 경제·민주적 성숙도를 지닌 나라 중에선 우리나라가 사실상 꼴찌다.
프랑스와 벨기에,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 정부는 지디피 대비 약 60% 안팎의 돈을 지출한다. 스페인, 영국, 독일과 같은 서유럽 국가 정부는 지디피 대비 약 50%가 넘는 돈을 지출한다. 일본(47.3%), 미국(44.9%)처럼 지디피 규모가 엄청난 나라도 정부 지출 규모가 지디피 대비 45% 안팎이다. 정부 지출 규모가 미국보다 적은 나라는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이스라엘, 스위스와 같은 상대적인 소국에 불과하다.
요약해보자. 우리나라 정부는 지디피 대비 38%에 이르는 돈을 지출한다. 정부 지출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를 오이시디 국가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선진 국가 모임인 오이시디 국가들의 정부 지출 규모는 지디피 대비 50% 수준이 일반적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잘 발달한 나라들의 정부 지출 규모가 지디피의 50% 정도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학 교수이자 정치학 교수인 찰스 린드블롬은 우리는 시장(market)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체제(market system)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물건을 거래하고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발생된 시장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정치적 합의에 따른 시장체제가 우리 시장에서의 거래 방식과 행동 양식을 만든다. 결국 시장이 아닌 시장체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경제적 실질을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국가 예산을 이해해야 한다. 예산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체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와 시장을 자주 언급하지만, 자유와 시장은 국가 정책 바깥에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원리와 국가정책은 시장체제 안에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형성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639조원의 세부 내용을 분석해보자. 이 가운데 보건복지 분야 지출액이 226조원이다. 전체 지출액의 35%를 차지한다. 2023년 총지출액은 전년보다 5.1% 증가했다. 보건복지 분야는 3.8%만 증가했으니 총지출 증가율을 하회한다. 2022년도 물가상승률은 총지출 증가율과 거의 비슷한 5.1%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총지출은 2022년도 수준으로 정체되었고 보건복지 지출은 2022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226조원이라는 금액은 대단히 큰 규모다. 지방정부에 지급되는 ‘지방행정 분야’에 속하는 돈의 상당 부분은 다시 지방정부가 복지 분야에 지출하니 실제 보건복지 지출은 이보다 더 크다. 특히 건강보험 지출액까지 합산해야 실제 우리나라 보건복지 지출액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이에 오이시디 기준 우리나라 전체 보건복지 지출액은 지디피 대비 12.2% 정도 된다. 프랑스는 전체 지디피 대비 31%를 정부가 보건복지에 지출하고 일본은 22%를 지출한다. 미국도 19%를 지출하고 오이시디 평균도 지디피 대비 20%를 보건복지에 지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복지 지출 비율은 대단히 낮다. 콜롬비아(13%)보다는 낮지만 그나마 튀르키예(12%), 칠레(11.4%)보다는 많다.
OECD 국가에 비해 보건복지 지출이 적다는 것은 이해하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앙정부가 보건복지에만 226조원을 지출한다지만 내가 받은 복지 혜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보건복지 지출의 구성내역을 보면 내가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 중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은 바로 국민연금 지출이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는 노령연금 지출액만 36조원이다. 그리고 공무원연금이 20조원, 기초연금이 19조원이다.
이상 3대 연금 지출액만 76조원이니 연금 수급자 연령이 아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정책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나라 복지 지출은 지나치게 연금 위주일까?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연금 지출액은 GDP 대비 약 4% 수준이지만 OECD 국가 평균은 9%가 넘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정부 지출 규모 자체가 OECD 평균보다 적지만(우리나라 38% vs. OECD 평균 44%) 사회복지 지출액은 더 적고(12% vs. 20%) 연금 지출액은 훨씬 더 적다(4% vs. 9%),
이상민 _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