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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신냉전 아닌 각자도생…‘한국은 등터진 새우’가 아니다”​

등록 2023-01-11 07:00수정 2023-01-12 17:38

정남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무역·통상 전문가 김양희 교수
‘신냉전’이나 ‘탈세계화’는 부정확하고 과장된 진단
선별적이고 파편적인 ‘보호주의의 진영화’가 진행중
김양희 대구대(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보호주의의 진영화’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양희 대구대(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보호주의의 진영화’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양희 대구대(경제금융학부) 교수는 2019년 6월 외교부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국장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잠시 쉬면서 연구의 리듬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개방직 공모에 응했다. 그런데 자리를 옮긴 직후부터 국제통상과 관련해 ‘역사적’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옮긴 지 일주일이 되던 7월1일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심화에 심화를 거듭했다. 2022년1월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됐다. 2월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침공을 강행했다. 5월23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정상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화상회의로 참석해 참여를 선언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주제의 연구보고서를 써야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경제와 외교, 안보를 두루 살피는 경험을 한 김 교수가 가장 집중한 것은 ‘공급망’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신냉전’이나 ‘탈세계화’라는 진단은 과장된 것이라며, ‘패권국 주도의 보호주의 진영화’가 적절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그저 미국 중국이라는 고래들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아니라고도 했다. 위협과 기회 요인이 뒤섞인 변화 속에 나름 영향력도 가진 존재라고 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갑작스레 출범하기 5개월 전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칼럼을 쓰시는 등 선구적인 연구와 의견을 많이 내셨습니다.

“최근 몇년은 제게 격변하는 시대를 엄청나게 압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단지 남보다 한걸음만 앞서면 전문가가 돼버리는 섬뜩한 경험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제 자신에게 겸허할 것을, 두려움을 버리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해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냉전시대 냉전의 전초기지로서 미국 등 서방국가의 지원을 많이 받았고, 시장개방에 따른 국제교역의 확대가 좋은 여건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은 기존 국제 무역 질서에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신냉전의 도래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교수님께선 이 변화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읽는가, ‘시대 진단’이랄까 ‘정세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단이 잘못 되면 처방도 잘못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지금은 ‘신냉전’이라거나 ‘탈세계화’라는 진단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냉전을 벌이는 진영의 구분이 너무 모호하고, 가치나 이념보다 자국 실리에 기반하다보니 가변적입니다.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고 봅니다. 탈세계화도 과장된 표현이라고 봅니다. 저는 ‘보호주의가 선별적, 파편적으로 진영화돼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협력에서 대립으로 대전환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그런 진단에도 유보적입니다. 분명히 과거에 비해 대립으로 전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협력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2019년 1월 체결된 1차 미-중 무역협정에서 중국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한 품목이 549개인데요. 그건 중국 말고 다른 데서 사올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이중 352개 품목에 대해 관세 부과 유예를 한시적으로 연장했습니다. 보호주의가 진영화하면서 미-중이 이제 ‘헤어질 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영역도 있고, 협력할 수밖에 없는 영역도 있으니 입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신냉전이라고 하면 간명하긴 하지만 부정확해요. 우리가 어느 한 쪽에 서야 한다는 이야긴데, 그런 잘못된 진단으론 우리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보호주의의 진영화’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습니까?

“미중 패권경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게 기술이지요. 저는 기술의 첨단화라는 측면보다 형질 전환이란 측면에 주목합니다. 첫째 오늘날의 인공지능(AI)이라든지, 양자 기술, 바이오 등은 산업 전반에 두루 쓰이며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횡단기술’입니다. 둘째 민용으로만이 아니라, 군용으로도 쓰이는 ‘이중용도’ 기술입니다. 그래서 경제와 안보를 뚜렷하게 분리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건 제가 만든 개념인데, 미국이 지금 주도하고 있는 것을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산업 정책을 구사해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핵심광물(희토류), 바이오 등의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고, 동맹과 우방을 활용해 자국내 투자를 유치하거나 동맹과 우방으로 선별적이고 배타적인 공급망을 다변화하려고 합니다. 우방의 선별 기준으로 ‘가치’와 ‘신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도 응전할 텐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인공지능 기술의 경우 오히려 미국이 좀 뒤처졌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중국이 빨리 쫓아가는 부분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금방 미국을 딛고 올라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기술은 상호의존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단독으로 움직이지만 미국과 상호의존하는 선진 7개국(G7)이나 유럽연합 주요국이 갖고 있는 기술력은 아직 중국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물론 시간은 중국 편이겠지요. 반도체도 언젠간 중국이 따라잡겠지요. 저는 2027년, 2032년, 2049년, 이 세개의 연도에 주목합니다. 시진핑이 4연임에 도전하는 해가 2027년인데요,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변화가 있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미국이 작년 10월 새 안보전략을 제시하면서 향후 10년이 결정적(decisive)이라고 했습니다. 얼추 2032년 전후가 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습니다. 2049년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

―미국과 중국이 모두 우리에게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부터 있었습니다. 교수님 말씀 들어보면 그런 재앙의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을 오독해선 안됩니다. 미-중간에도 계속 협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돼 있기 때문에 옛 냉전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미국이 단독으로 중국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에, 보호주의가 진영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선택을 강요받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미국, 중국이라는 두 마리 고래 사이에 끼어 등터지는 새우처럼 묘사하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엔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양쪽이 줄 세우기를 강요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정말 힘없이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자그마한 존재는 아니거든요.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쪽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4대 핵심품목 가운데 우리와 해당사항이 없는 희토류를 뺀 3가지 품목의 제조 협력을 할 국가로 우리나라를 거론했습니다. 비록 백신은 위탁 생산이지만, 3가지 품목을 다 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 국가가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레버리지(외교적 지렛대)입니다.”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반도체는 횡단기술의 횡단기술입니다. 인공지능, 양자 모두 반도체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에게 반도체는 전략자산입니다. 첨단 이중용도 횡단기술이 시스템 반도체만으로 굴러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메모리 반도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걸 무시하지 못합니다. 7나노 이하 첨단 시스템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 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만약 어떤 일로 한국에 사드 관련 보복하듯이 경제보복을 하면 혐중 정서가 하늘을 찌르면서 미국 쪽으로 확 기울어지고 우리도 결정적인 순간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할 수 있는데, 그런 어리석은 일을 못할 겁니다. 한국이 지닌 제조강국의 강점, 반도체 제조의 강점을 잘 활용해서 우리나라를 미국, 중국 양쪽이 함부로 못하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해왔는데, 이제 어떻게 바꿔야 한다, 이런 말도 많이 나옵니다만.

“저는 그런 단순어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안미경중’했나요? 아닙니다. 지난 정부가 중국에 과하게 경도했다는 인상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북한 문제에서 중국이 충분히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중국과 교역이 많았다고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과 거래를 안했나요? 그렇게 사안을 단순화시키고 이분법적으로 보면 우리가 설 땅이 없어집니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현재 가장 앞서 공격적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 것이 반도체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은 반도체의 원천기술, 설계, 장비 모두 강하고, 소재도 강한 편입니다. 다만 제조만 약합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제조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신뢰가치사슬을 만들려고 합니다. 경제논리보다 안보가 훨씬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반도체는 우리가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미국,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취약한 원천기술, 장비, 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핵심 국익입니다. 하지만 신뢰가치사슬이 우리가 외부와 거래하는 것 전부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얘기해두고 싶습니다. 보호주의 진영화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것이 우리한테 주는 기회 요인을 잘 찾아야 합니다. 그 파고를 피할 수 없다면 발상을 전환해 올라타는 것도 생각해야죠.”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투자를 어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중국은 비용 개념없이 반도체 연구개발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언젠가 우리를 따라잡을 나라입니다. 미국이 저렇게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고 있는데 그것에 역행해서, 우리가 중국에서 반도체 첨단 공정을 계속 생산하는 게 길게 봐서 도움이 될까, 냉정하게 판단해야죠. 중국의 기술 습득 시간만 단축해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고 저는 말합니다. ”

―중국 시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중국 시장을 잃는 부분이 있겠지만, 동시에 진영 내에서 커지는 시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배터리의 경우 중국이 미국 시장엔 접근을 못할테니까요. 앞으로 미국이 4대 핵심 품목에 더해 추가하는 6대 품목도 마찬가집니다. 중국의 배터리를 미국과 유럽이 막아주고 있는 동안 그 사이를 지금 얼른 비집고 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호주의 진영화의 위협 요인보다 기회 요인을 찾자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중국시장은 보호주의가 진영화돼서 우리가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습니다. 웬만한 기업들은 이제 거의 다 빠져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중국시장에서 잃는 것을 미-중 전략경쟁의 결과로만 보면 그것은 사태를 오독하는 것입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이 신뢰가치사슬을 만드려는 품목은 반도체 외에도 많아지겠습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신뢰가치사슬이 곧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반도체에선 아주 약하니까, 반도체 정도가 그나마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뢰가치사슬이 작동하려면 우선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상호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여전히 관성적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방이 미국을 믿고 따라가지 못하지요. 한편으로 국가 대 시장이라는 관계에서 안보라는 명분이 시장의 작동원리인 효율을 과도하게 침해하면 시장에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의 최대 수출 상대국이 중국인데, 그걸 싹 다 못팔게 한다면 지속가능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상업용 말고는 보조금을 못받게 됐습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는 미국 내로 제조를 제한하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북미 지역으로 확대돼있지요. 그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는데, 배터리는 반도체만큼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안보보다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중시하는 것이지요. 조립차든 뭐든 뭐가 보조금을 받느냐만 생각하면 시야가 좁은 것입니다. 보조금을 준다니까 국내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품목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조금을 보고 따라가다, 과거에 미국이 그랬듯이 우리 제조업이 공동화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런 효과를 막겠다고 유럽연합(EU)이 하려는 것처럼 각국이 치열한 보조금 경쟁을 벌여도 결과는 공멸이겠지요. 우리로서는 진영 안에서는 자유무역이 이뤄지게 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은 보호주의를 진영 간에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진영 내에서도 휘두르려고 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신뢰가치사슬은 만들 수 없다고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반도체 말고 다른 품목에서 미국이 신뢰가치사슬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네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난 뒤 예일대학에서 1387개 기업과 비정부기구를 대상으로 대러시아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들이 대거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나온 듯이 보도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 기업중 철수 비율은 23%로 중단(36%)보다 적어요. 더 중요한 건 어떤 업종이 철수하느냐인데,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제조업과 정보기술(IT) 분야는 철수가 많아요. 이게 바로 신뢰가치사슬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러시아가 경쟁력이 있는 에너지와 광물 소재는 철수와 사업유지가 반반인데 미국, 일본 등 서방기업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헬스케어처럼 전쟁과 무관한 것은 굳이 나올 필요가 없죠. 러시아에서 나와 카자흐스탄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단칼에 디커플링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입니다. 미국이 신뢰가치사슬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고 그것 또한 일부일 뿐임을 예고하는 것이죠.”

김양희 대구대 교수.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양희 대구대 교수.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실히 바꾸고 있는 것이 있다면 뭘 들 수 있겠습니까?

“공급망이 확실히 진영화되는 것으로 방위산업, 에너지가 추가됐고, 금융도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서방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고, 사우디와 중국은 석유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해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신냉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자국 실리에 기반한 광범한 회색지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 인도네시아가 확실히 누구편이라 할 수 있나요? 자국 이기주의, 각자도생이 핵심이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보호주의 진영화도 이용될 뿐입니다. 코로나 대유행 퍼진 뒤 중국의 민낯을 봤고, 트럼프 대통령 이후 어디에도 멋진 선진국이라도 할 만한 나라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안 브레머(유라시아그룹 회장)가 말한 지제로(G0)의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정부가 최근에 ‘인태(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불가피하다라고 봅니다. 미국은 주변에 적성국가가 거의 없지만, 우리는 러시아 중국 북한이 포진해있습니다. 우방이 많이 있는 지정학적 공간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다만 과도하게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을 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인태전략에는 미국, 일본, 인도가 새로 들어갔지만 이 전략의 핵심지역이 여전히 아세안이라고 말하면서 지난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계승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랬다면 미국이 만든, 혹은 일본이 먼저 이니셔티브를 쥔 인태전략에 우리가 편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관되게 해온 것과 공통분모를 찾아 협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요.”

―미중 패권 경쟁에 관심이 쏠려있는 동안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 문제는 쏙 들어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제조강국이라고 말했으나, 사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위원으로 3년간 활동하는 동안 중국의 추격에 밀려나고 있는 한계기업의 위기를 절감했습니다. 경제안보 시대에 산업정책의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기업의 자생력, 기업가 정신을 갉아먹지 않는 지원 정책을 써야 할 텐데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제조강국으로서의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내 제조업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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