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사 중흥건설의 총수인 정창선 회장은 계열사 총 39곳 중 10곳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원주 중흥건설 사장도 계열사 10곳에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총수 일가 미등기 임원이 사익 편취 규제 대상에 집중적으로 재직하고 있어 총수 일가가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67개 공시 대상 기업집단(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 2521곳(상장사 288곳)의 총수 일가 경영 참여, 이사회 구성·작동, 소수주주권 작동 현황 등을 분석한 ‘2022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이번 분석에는 올해 지정된 대기업집단 76곳 가운데 두나무, 크래프톤 등 신규 지정집단 등은 제외됐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58곳의 소속 회사 2394곳 가운데서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경우는 총 178건으로 전년보다 2건 늘었다. 총수는 평균 2.4개 회사에, 총수 2·3세의 경우 평균 1.7개 회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했다.
총수 일가 미등기 임원은 총수 일가의 지분율 등이 높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집중적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총 178건 가운데 과반(58.4%)인 104건이 규제 대상 회사에 재직했다.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는 총수일가의 보유지분이 20% 이상인 회사와 그 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를 일컫는 말로, 공정거래법은 이러한 구조에서 일감 몰아주기나 사업기회 유용 등 부당한 내부거래가 일어나기 쉽다고 보고 별도로 규제하고 있다.
가장 많은 계열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총수는 중흥건설 정창선 회장이었다. 중흥건설은 장남 정원주 중흥건설 사장 등 총수 2세들도 계열사 10곳에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유진(9개), 씨제이(CJ·5개)도 총수 본인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여러 계열사에 미등기 임원을 겸임하고 있었다. 하이트진로의 경우는 박문덕 회장이 5개 계열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두 아들과 조카·사촌까지 일가친척이 국내 계열사 15곳 중 7곳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미등기 임원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집중적으로 재직하고 있어서, 총수일가의 책임과 권한이 괴리되는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등기 임원은 법인 등기부 등본에 등록되지 않아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지만, 명예회장·회장·부회장·사장·부사장 등 회사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일하고 있는 자를 뜻한다. 지배주주가 미등기 임원으로서 경영상 의사결정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경영 성과에 크게 상관없이 고액의 보수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공익법인에서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비율도 66.7%로 상당히 높았다. 공정위는 “공익법인이 본연의 사회적 공헌 활동보다 편법적 지배력 유지·강화에 활용될 우려도 있어서 의결권 제한 수준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내년에 실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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