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서울과 경기 과천·광명·성남(분당·수정)·하남 등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 등 다주택자들의 종합부동산세가 대폭 줄어든다. 종부세 중과세율 적용 대상이 보유 주택 가격이 20억원을 훌쩍 넘는 3주택 이상 보유자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이를 포함한 각종 감면 조처로 인해 종부세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등 정치권의 세법 개정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시민단체·학계 등은 지적한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종부세법 개정안을 보면, 내년부터 종부세 중과세율은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이 12억원을 초과하는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만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개정으로 종부세 납세액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드는 건 부동산 규제지역인 조정지역 2주택 보유자와 과표 12억원 이하 3주택 이상 보유자 등이다. 적용 세율이 크게 낮아져서다.
현재 종부세는 주택 공시가격에서 6억원(1세대 1주택자 11억원)을 기본 공제하고 정부가 정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올해 60%)을 곱해 과표를 구한 뒤, 여기에 세율을 적용해 매긴다. 1주택자 등은 과표에 따라 일반 세율 0.6∼3%, 조정지역 2주택자 및 3주택 이상 보유자는 중과세율 1.2∼6%를 부담한다.
애초 정부는 종부세 중과세율을 전면 폐지하고 일반 세율을 0.5∼2.7%로 낮추려 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로 중과세를 유지하되, 적용 대상을 과표 12억원 초과 3주택 이상 보유자로 줄였다. 종부세 일반 세율과 중과세율은 각각 0.5∼2.7%, 0.5∼5%로 낮췄다. 종부세 기본 공제액도 9억원(1주택자 12억원)으로 끌어올렸다.
과표 12억원은 시가로 환산하면 29억원(공정가액비율 60%·내년 아파트 공시가 현실화율 69% 기준)에 이르는 만큼, 보유 주택가격 합산액이 29억원을 밑도는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정지역 2주택자 등이 모두 중과세를 피하게 된 셈이다. 여기에 부부 공동 명의로 1주택을 보유한 이들도 합산 공제액이 기존 12억원(1명당 6억원)에서 18억원(1명당 9억원)으로 늘어나며 시가 26억원(공시가 현실화율 69% 기준) 아파트 보유자까지 종부세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됐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집값 하락으로 종부세 부담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감면을 더 확대해 종부세 제도가 무력화된 것”이라며 “세금이 부동산 자산 쏠림과 자산 양극화, 향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광풍, 금융위기 위험 등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종부세를 무력화하면 나중에 큰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종부세 감면 확대를 포함한 부동산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투기 지역 등 조정지역의 일부 규제 해제 조치를 내년 1월에 발표할 예정”이라며 “부동산 세제는 내년 2월 각종 취득세 중과 인하 조치를 담은 법령을 국회에 제출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내년부터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 구간(4개)에서 1%포인트씩 인하하는 방안도 비판 대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가 재정 운용을 위한 세입이 부족한데도 ‘친기업’을 선언한 정부가 기업들에 보너스를 준 것 외에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여야가 정치적으로 타협점을 찾다 보니 개정 세법에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에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종부세법 등 세법 개정안들은 정부 원안과 비교해 일부 달라졌지만, 내년 세입 예산안에 바뀐 세수 추계가 반영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애초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22%)로 오는 2027년까지 5년간 누적 세수가 27조9천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모든 구간 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며 향후 5년간 세수 감소 전망액도 24조4천억원으로 축소됐다. 앞으로 감세 규모가 3조원 넘게 축소되는데도 정부의 각종 나라 살림 지표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에 변화가 생기면 세입 예산에도 이를 반영하는 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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