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이마트 앞에 내걸린 의무휴업 안내문.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구광역시가 광역시 최초로 내년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꾸기로 했다. 이번 대구시 결정은 정부가 관련 업계를 아우르는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를 꾸려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 관련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앞으로 서울특별시와 다른 광역시도로 확산할지 주목된다.
20일 대구시와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구시는 19일 한국체인스토어협회·대구시상인연합회·슈퍼마켓협동조합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형마트 휴무를 주말에서 평일로 변경하는 내용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 협약식’을 했다. 대구시 쪽은 “대형마트 주말 휴무가 시장이나 소상공인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온라인 시장 활성화로 인한 중소 유통업체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으며, 주말 대형마트 휴무로 시민이 겪는 불편도 커 이번 협약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각 구·군과 협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초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게 된다.
대형마트의 영업규제와 의무휴업일을 정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2012년 제정)에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의무휴업일을 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둘째·넷째 주 일요일로 대형마트 휴무일이 정해진 것은, 이 제도 도입 당시 서울시 각 자치구가 조례로 규정한 뒤 6대 광역시도 이를 따르면서 굳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전국 403개 대형마트 가운데 35개 기초지자체에 있는 100개 정도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이 아닌 날로 휴업일을 운영하고 있고, 경기도 일부 지역은 평일인 수요일에 두 번 쉰다”며 “휴일 휴업은 지금도 소상공인 단체들과 협의만 되면 지자체 조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일 오후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열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 협약식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8개 구청장·군수, 전국상인연합회 대구지회장, 한국체인스토어협회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는 윤석열 대통령이 ‘규제개혁 1호’로 꼽았던 공약 가운데 하나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6월 국민제안 코너를 신설해 접수한 민원 제안 중 10개 안건을 추린 뒤 국민 투표에 부쳐 우수 제안 3건을 제도화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당시 1위를 차지한 안건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였다. “중요한 정책을 사회적 합의 없이 온라인 투표로 정한다”는 비판과 투표 과정에서의 어뷰징 발생 가능성 논란 등으로 국민제안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지난 10월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은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를 꾸려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 관련 논의를 계속해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0월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대구를 방문했을 때, 대형마트 평일 휴업 전환 추진을 대구시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에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 완화 방침은 이미 확정적인 분위기고, 사회적 반발과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생안을 먼저 도출하자는 것이 상생협의회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무총리실 쪽 역시 “지자체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일괄적인 완화는 불가능한 만큼, 범위를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쪼개 각 지역 상황에 맞게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구시가 스타트를 끊은 만큼 업계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평일 변경이 다른 시·도로 확산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미 대구시 외에 기초자치단체 3~4곳에서 ‘마트 휴업일 평일 전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유통업계가 대형마트 대 소상공인(전통시장)의 대결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라인과 경쟁하는 체제로 변화했다”며 “통계청 조사결과만 봐도, 지난해 대형마트 시장점유율은 2012년보다 2.7%포인트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온라인 매출 점유율은 15.9%포인트나 높아졌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대형마트 노조원들이 대구 8개 구·군과 대구시상인연합회, 체인스토어협회, 슈퍼마켓협동조합이 체결한 의무휴업일 평일 변경 및 상생발전 업무협약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미 온라인으로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라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전통시장 활성화와 골목상권 보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소비자 불편만 키웠다는 점에 지역상인들이 공감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대형마트가 영업을 하면 그 안에 입점한 중소상인들의 매출 증대는 물론 주변 상인들에게도 오히려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판단에 따라 평일 의무휴업을 받아들이고 대형마트와 상생에 나서겠다고 결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류성재 대구상인연합회 사무처장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도 대형 식자재마트나 온라인 매출이 높아질 뿐 시장의 매출이 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며 “대형마트 주차장 무료 개방과 대형마트 전단광고를 통한 중소유통점 홍보 같은 상생안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반발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대구시 방침에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마트산업노조 대구경북본부 소속 노동자들은 전날 협약식이 열린 행사장을 찾아 “노조와 상의 없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민단체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오프라인 쇼핑이 주로 이뤄지는 휴일이 아닌 평일로 휴업일을 전환할 경우, 지역 상권이 얻는 수혜가 축소될 수밖에 없고, 노동자 역시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낼 수 없어 ‘휴식권 보장’에 지장을 주게 된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대구/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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