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의사를 밝힌 구현모 케이티(KT) 대표가 지난달 16일 자사 인공지능(AI) ‘믿음’ 상용화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케이티(KT) 차기 대표는 ‘경선’으로 선출될 전망이다. 케이티 이사회가 연임 의지를 밝힌 구현모 대표에 대해 ‘적격’ 판정을 내렸지만, 구 대표가 복수 후보에 대한 심사를 요청하면서 재심사가 이뤄지게 됐다. ‘쪼개기 후원’ 혐의로 재판 중인 구 대표가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반대표를 의식해 정관에도 없는 경선 카드라는 승부수를 띄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케이티는 13일 이사회 결과 설명자료를 통해 “이사회는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원회로부터 구 대표의 연임이 적격하다는 심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구 대표는 주요 주주가 제기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 구조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복수 후보에 대한 심사를 요청했고, 이사회가 논의 끝에 추가 심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결국 연임 적격 판단을 받은 상황에서 구 대표와 다른 후보자 간 ‘경선 절차'가 치뤄지는 것이다.
구 대표의 결정은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반대표를 의식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구 대표는 현재 회삿돈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라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구 대표 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케이티 주주총회에서 구 대표와 같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박종욱 각자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최근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케이티처럼 총수 일가가 없는 기업들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어, 구 대표가 국민연금을 염두에 두고 복수 후보 심사를 요청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8일 김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소유구조가 광범위하게 분산된 기업의 건강한 지배구조 구축 문제를 검토할 때”라며 “국민연금이 (총수 일가) 지배구조가 확고한 기업과는 다른 측면에서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케이티 지분 10.35%를 보유한 1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케이티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 방식 등에 관여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투자기업의 이사회에 임원 선임 안건이 올라오면 의안 분석을 통해 후보들의 적절성을 검토하지만, 사전적으로 후보 선정 과정에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케이티 안팎에선 구 대표의 경선 역제안이 정관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케이티 관계자는 “현직 대표의 경우 연임 적격 심사 뒤 주주총회 승인을 받거나, 부적격 판단으로 물러나는 절차인데 정관에도 없는 ‘연임 합격 뒤 추가 공모 경쟁’이란 새로운 룰을 만들어 꼼수를 부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케이티 쪽은 “‘대표 선임과 관련해 필요한 사항은 이사회에서 정할 수 있다’ 문구가 정관에 명시돼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지난달 초 연임 의사를 밝혔다. 디지털 전환 등 지난 3년간 경영 평가가 나쁘지 않고 직원 대다수가 속한 케이티 노조의 지지 표명도 나와 연임이 유력한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 때문에 케이티 안팎에선 “구 대표가 경선을 제안한 것이 국민연금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케이티 이사회는 연내에 복수의 대표이사 후보 심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복수 후보 선정 방법과 일정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달 내 결정될 대표 후보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때 최종 승인 절차를 거쳐 대표로 선임된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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