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고물가가 계속되는 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낮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제2금융권에 유동성을 지원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언급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은은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12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매년 4번 발간되는 이 보고서는 한은의 향후 정책 방향 등을 담은 것으로,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된다.
향후 통화정책을 운영할 때 고려할 요인으로 한은은 네 가지를 꼽았다. 먼저 높은 물가 상승률의 지속과 성장 하방 압력의 확대를 언급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금융·외환시장이 받을 영향과 지난 9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급격히 악화한 단기자금·신용채권 시장도 주요 요인으로 짚었다.
내년 심화할 전망인 물가와 경기 간 상충관계(trade-off)에 대해서는 물가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우리 경제에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지만,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경우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운용하는 것이 중장기 경제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내년 경기가 둔화하더라도 물가가 계속 높은 수준이면 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마찬가지로 물가 안정과 상충하는 금융 안정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일단 정부와 한은의 각종 시장 안정화 조처로 금융시장이 회복하고 있기는 하나,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연말 자금 수급 악화 등을 리스크 요인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필요 시 적절한 시장 안정화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올해 말 단기 유동성 지원을 확대한다고도 밝혔다. 먼저 환매조건부채권(RP)의 총 매입 규모를 지난 10월에 예상했던 6조원에서 더 확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매입하는 환매조건부채권의 만기도 14일에서 1개월로 늘릴 예정이다. 한은이 금융기관들로부터 환매조건부채권을 사들이면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공급되는 효과가 난다.
다만 제2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유동성 지원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한은은 “최근 시장 불안의 기저에는 그동안 저금리 기조 하에서 비은행 부문을 중심으로 부동산 등 특정 부문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가 지속되는 등 과도한 리스크 추구행위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도 유의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상형 부총재보는 이에 대해 “도덕적 해이와 금융시장 불안은 상충할 수 있는 문제”라며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강도로 (대책이) 집행돼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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