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들의 올해 연말 인사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하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며 변화보다는 ‘안정’과 ‘미래’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더욱이 대부분 지난해말 비교적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한 터여서, 위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직과 인사를 크게 흔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한 뒤 처음 맞는 정기 인사라는 점에서 이목이 쏠린다. 삼성은 통상 12월 초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말 반도체·세트 두 부문을 통합하고 50대 대표이사로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투톱 체제 출범 1년 만에 큰 틀의 변화를 꾀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주요 최고경영자(C급) 인사는 최근 물러난 생활가전사업부장 자리를 메우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등 그룹 차원의 조직 변화가 연내에 이뤄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은 상태다. 사장급 인사의 변수이긴 하나, 이 경우에도 주요 사업부문 수장을 흔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임원 인사는 주요 그룹 중 가장 늦은 편이다. 현대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가신 그룹들이 대부분 물러나고 정의선 회장 직할체제로 세대교체를 마무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룹 차원의 진용에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어서 이를 위한 조직·인사 개편이 이뤄질지 관심거리다.
에스케이(SK)그룹 역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는 유임 전망이 우세한데, 최 회장이 최근 “변화를 통한 기회”를 강조한 만큼 예상 밖의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에스케이는 지난해 에스케이시(SKC) 외에 모든 대표이사를 유임시켰다.
엘지(LG)그룹은 지난해 지주회사 엘지와 주력 계열사 엘지전자 대표이사를 교체하며 구광모 회장의 친정 체제를 꾸렸고, 롯데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대표이사로 영입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했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주요 그룹사 경영진들이 지난해 비교적 큰 폭으로 교체됐다. 내년은 수익성 방어와 재무 위험 관리가 최우선 과제인만큼 인사에서 큰 변화를 선택할 여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 사업에서는 외부 영입 등 활발한 발탁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바이오 사업에 조 단위 투자를 발표한 4대 그룹 관계자는 “미래 사업은 연구개발(R&D)과 투자가 주축인데, 불황기가 인재 영입의 적기인 측면이 있다. 당장 1~2년을 바라보는 계획이 아니어서 내년에도 관련 인력과 조직을 늘리고, 능력있는 경영진도 적극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원 인사는 한파가 예상된다. 지난해말 코로나19 대유행 특수에 따른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대규모 승진 잔치를 벌인 것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승진 인사는 올해 실적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의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사실상 비상경영 상태와 마찬가지여서 연말 인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은 사실상 금기어다. 올해 실적이 꽤 괜찮은 계열사나 사업부 임원들도 혹시나 하고 긴장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헤드헌팅 회사 유니코써치가 최근 조사한 바로는, 국내 100대 기업(매출액·상반기 기준)의 임원 수는 7175명으로 지난해(6664명)보다 511명, 7.7% 증가했다. 지난해 회사당 평균 5명씩 임원을 더 발탁한 셈이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긴축 경영을 위해 임원 자리부터 동결하거나 줄이려는 기업들이 많아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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