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산업·노동·지역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한겨레신문사와 금속노조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후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주목을 받았던 조선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해보는 토론회가 14 일 금속노조와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렸다 . 조선업은 다른 산업에 견줘 국내 노동시장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조선업의 현재와 미래는 산업적 특성뿐 아니라 노동과 지역사회를 포괄해서 다뤄야 한다 .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산업 전환은 노동계와 시민사회 , 재계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 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 조선업은 제조업 가운데 가장 고용효과가 크고 경쟁력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끌고 가야 할 산업 ” 이라며 “ 시황주기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그에 따른 경영 전략 , 정책을 수립해 각종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 고 말했다 . 그는 “ 조선업은 해운업의 특성과 맞물려 호황 후 장기불황의 특성이 나타나는데 , 현재 글로벌 시황은 2016 년 침체기를 거쳐 2021 년부터 회복되고 있다 ” 고 진단했다 . 2021 년 세계 선박 발주량은 5173 만 CGT( 표준선환산톤수 ) 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고 , 선가도 많이 올라 2020 년 말 이후 클락슨 ( 영국의 세계 최대 해운 시황 분석 및 선박 매매회사 ) 신조선가 지수가 29% 나 올랐다 .
조선 3 사인 한국조선해양 ( 현대중공업 ), 삼성중공업 , 대우조선을 비롯해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는 크게 늘었다 . 대형컨테이너선과 엘엔지 (LNG) 선 등의 점유율을 높이며 2021 년 1767 만 CGT( 전년 대비 98.7% 증가 ) 를 수주했다 . 2022 년 8 월까지 누적 수주는 1192 만 CGT 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 필요 수주량인 연 1000 만 ~1300 만 CGT 는 달성한 상태다 .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건조량도 2021 년에 전년 대비 19% 증가한 1051 만 CGT 를 기록했다 . 2022 년에는 8 월 기준 820 만 CGT 으로 부진하지만 , 2023 년부터 다시 1000 만 CGT 이상으로 정상화될 전망이다 .
양 선임연구원은 “ 단기적으로 경기후퇴 , 금리상승 등의 영향으로 일시적인 부진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 조선업계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 ” 이라며 “3 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해 여유가 있다 ” 고 진단했다 . 그는 “ 국내 조선업의 위기는 호황 때 돈을 많이 벌기만 하고 이후에 다가올 불황에 대비하지 못한 경영의 후진성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 ” 며 “ 공공기관 성격이 강한 대우조선이 심했는데 ,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 ” 이라고 내다봤다 . 그는 또 “ 조선업 경험이 없는 한화가 초기의 혼란에서 빨리 벗어나 경영이 안정될 수 있도록 노조가 너무 강경하게 나가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 고 조언했다 . 그는 또 “ 국내 조선 3 사의 지나친 저가수주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그 부담이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 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 조선업의 위기는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와 지역소멸 문제를 함께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 ” 고 밝혔다 . 조선업의 노동시장은 크게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고 , 하청에서 다시 1~2 차 하청 상용직 , 물량팀 , 아웃소싱 노동자 등으로 분리된다 . 또 생산직의 99%, 사무기술직의 90% 가 남성일 정도로 여성에게 배타적이다 . 이에 따라 ‘ 남성 생계 - 여성 가사 ’ 형태의 “ 산업 가부장제 구조를 띠고 있는데 , 이 구조에서 남성 가장의 벌이와 고용에 문제가 생기면 그 도시는 시골처럼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 는 것이다 . 따라서 여성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 조선업은 여성에게 양질의 ‘ 커리어잡 ’ 을 제공할 수 있다 .
양 교수는 “ 조선업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현장에서 이뤄지는 숙련이 중요한 산업 ” 이라며 “ 엔지니어들은 생산직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과 분리할 수 없다 ” 고 했다 .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면 조선업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 . 하지만 “ 예전에 잘살았던 시절의 노스텔지어를 가지고 조선업의 미래를 그리면 안 된다 ” 는 게 양 교수의 생각이다 .
조선업의 전환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북유럽식과 일본식은 모두 생산 ( 완성품 ) 의 비중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 양 교수는 기본설계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생산을 줄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 선박 대량 생산체계를 포기하더라도 조선소 (Shipyard) 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숙련 생산직 노동자들을 확보해야 한다 . 일본처럼 이중노동자들을 많이 활용하게 되면 품질의 문제를 담보할 수 없다 .
토론자로 나선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 조선산업의 다단계 , 하청 , 노사갈등 , 디지털 , 탄소중립과 더불어 지역 편차와 글로벌 경쟁력까지 고려해서 단계적으로 해결책을 정리해야 한다 ” 고 제안했다 . 김영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 조선업의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지역의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 고 말했다 .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 대우조선을 인수하려고 하는 한화의 노사관계를 볼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 한화가 하청노조 파업에 대한 손배소송을 모두 취하하는 전향적인 조처를 취한다면 노동자들이 기뻐할 것 ” 이라고 제안했다 . 김용운 전 거제시 의원은 “ 조선업 불황 때 거제에는 이를 대신할 산업이 없다 . 지역에서 이를 해소할 만한 능력이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에 지역노사위원회 같은 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 ” 고 말했다 . 김경식 고철연구소장은 “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조가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를 도와주는 건 어떤가 . 노조가 너무 태클을 세게 걸지 말고 큰틀에서 합의하고 그 다음에 노조로서 할 일을 하면 된다 ” 고 제안했다 .
토론회에 앞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조선업을 비롯한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하청노동자를 비롯해 잘 들리지 않았던 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기업과 노동, 지역사회가 위기 극복 방향에 대한 지혜를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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