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 오찬에서 양향자 특위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산업단지의 전력·용수 등 기반(인프라) 구축에 조 단위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는 방안이 국회 쪽에서 재추진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년을 포함한 중장기 예산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기획재정부 예산 당국에서 전액 삭감한 것을 되살리는 형식이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향자 의원은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재부, 산업부 쪽과 만나 얘기를 들어봤고, 추가로 산업계 의견도 들어볼 것”이라며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재부에 다시 요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대통령도 반도체 산업을 강조하는 상황이고, 인프라(구축)는 가장 중요한 최우선 순위인데, 이런 식으로 전액 삭감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부 쪽에서 강력히 요청하고 있으며, 특위 차원에서도 당연히 (지원)해야 한다는 쪽으로 중지를 모아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양향자 의원을 비롯한 반도체특위 소속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단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1조원 규모의 예산을 기재부가 삭감한 사실을 보고받자 즉석에서 최상목 경제수석에게 “예산을 챙겨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삭감에 대한 업계 쪽의 불만이 특위를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돼 보완 지시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산업부의 애초 예산 요청은 1조원 규모였고 전액 삼각됐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는 상태다. 국회와 업계 쪽에서 확인한 결과, 내년 몫으로는 1천억원 가량 편성됐고, 이를 포함해 중장기 인프라 구축 예산으로 1조원을 잡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원 대상은 평택·용인·이천 등 6개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의 전력, 용수, 도로, 폐수처리장 같은 인프라 구축이었다.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견·중소기업들이 대거 입주한다는 점을 지원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당 반도체특위 쪽에서 이 예산안을 되살려내는 게 녹록지는 않다.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정부 예산안에 대해 국회 쪽에선 감액할 수 있는 권한만 갖고 있을 뿐이다. 증액을 하려면 정부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헌법 규정(제57조)은 1948년 제헌헌법 때 삽입된 뒤 한번도 바뀌지 않았을 정도로 강고한 원칙이다. 산업부의 요청을 단칼에 전액 삭감할 정도로 강하게 반대했던 예산 당국을 설득하는 게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여당 쪽에선 대통령의 관심과 지시에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산업부 예산안 심사 당시 기재부 쪽에선 “기업들이 조성 계획을 세워 이미 건설 중인 공장에 예산 지원을 해주는 건 비용을 줄여주는 것 외에 (경제적 파급 등) 기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전반적인 재정 기조를 긴축 쪽으로 잡고 있는 사정이 맞물려 있다.
예산 당국의 반대를 넘어서더라도 다수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 또한 남아 있다.
이에 양 의원은 “야당 쪽에선 반도체 (예산) 관련 언급이 별로 없다“며 “작년에 ‘한국판 뉴딜’ (방안) 발표 때 문재인 대통령도 반도체에 전폭 지원한다고 했기 때문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위 위원들과도 실시간 논의를 벌이고 있다”며 “(지원 방안을)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 규모가 과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양 의원은 “1조원 모두가 내년 예산으로 잡힌 건 아니며, 사업 기간별로 나뉘어 있는 중장기 예산이고, 소·부·장 기업들이 같이 입주하는 클러스터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물과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지중화 시설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많이 든다”고 말했다.
업계 쪽에선 인프라 구축 비용 지원 못지않게 기대하는 대목으로, 인·허가 문제와 민원 해결에 따른 부담 덜기이다. 전력·용수 같은 기반 구축에서 공공 부문의 뒷받침을 받을 경우,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고, 나중에 닥칠 민원을 풀어가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내심 바라고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