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존 에프 케네디 도서관에서 열린 달 탐사 프로젝트 60주년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전기차에 이어 바이오 산업도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시장인 미국이 자국 내 개발·생산을 우대하는 정책 추진이란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백악관은 12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헬스케어 산업뿐 아니라 농업과 에너지 등 산업 전반에서 생명공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새 일자리 창출과 공급망 강화, 가격 인하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미국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고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법률 제정에 이어 바이오의약품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패권 강화에 나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행정명령이 생명공학 관련 첨단기술과 생산시설 국외 이전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행정부가 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14일(현지시각) 업계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세부적인 지원 규모와 방식을 공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견제가 이번 행정명령의 주된 목적이지만, 전기차의 경우처럼 보조금 등을 수단으로 한 외국산 차별이 포함되면 국내 기업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커서다.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CMO) 또는 위탁개발생산(CDMO)하는 국내 바이오 업체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등 다수의 미국·유럽 제약사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에스케이(SK)바이오사이언스도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을 국내에서 원액부터 제조하고 있다.
에스케이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현재 국산 백신 중에는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이 없고, 위탁생산 역시 원액을 제조해 미국 기업에 공급하는 방식이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위탁생산 기업들한테는 불리하다. 반면 우시바이오 등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 바이오 기업이 배제되는데 따른 반사 이익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압력은 더 높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 바이오산업 시장 규모는 2027년 4301억달러(약 511조원)에 이를 전망(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이다. 이는 유럽 전체(2327억달러) 시장보다 1.8배가량 큰 규모이다. 이미 미국 현지 기업을 인수한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상당수다. 에스케이는 2018년 원료의약품 생산기업 엠팩을 인수했고, 에스케이팜테코는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 업체 시비엠(CBM)의 2대 주주다. 지시(GC)셀은 지난 4월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디엠오 기업 바이오센트릭을 인수했다. 에스디(SD)바이오센서는 지난 7월 국내 바이오 업체로는 최대 규모인 2조원에 미국 진단키트 업체 메리디언바이오사이언스를 사들였다.
현지 생산은 고객사의 수요가 늘 있었는데, 생산 물량을 보장해주고 인센티브까지 더해지면 미국 진출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인수한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미국 내 바이오 생산에 대해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리가 인수한 시러큐스 공장 운영과 확장에는 긍정적인 소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분야가 워낙 다양한데 (바이든의 행정명령은) 방향성 위주로만 나와 있다. 구체적인 인센티브 등 이행 방안이 나오면 영향 분석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회승·김영배 선임기자,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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