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연수구 송도의 한국가스공사 액화천연가스(LNG) 기지. 연합뉴스
국내에 도시가스용과 발전용 가스를 공급하는 ‘큰손’인 한국가스공사가 공기업 중 역대 최대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추진한다.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올해 30조원대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한국전력공사도 부동산 자산 재평가를 통해 7조원 규모 자본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재무 건전성 강화 방침에 따라 마련한 자구책이다. 그러나 전기·가스요금 인상이라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가스공사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이런 내용의 ‘재정 건전화 계획’을 보고했다. 정부가 앞서 지난 6월 말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이 200%를 넘거나 재무 평가점수가 기준을 밑도는 가스공사와 한전 및 한전 자회사 등 공공기관 14곳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하고, 자구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가스공사는 8천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공사가 수입하는 액화천연가스(LNG)의 가격 급등 여파로 올해 40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부채비율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영구채는 기업이 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채권이지만, 채권을 발행한 쪽이 원금 상환 만기 연장 옵션을 보유하는 까닭에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가스공사는 2013년에도 영구채 발행을 추진했으나 일반 채권보다 높은 고금리 부담 탓에 감사원이 제동을 걸며 발행을 취소한 바 있다.
현 정부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인 한국전력은 기재부 쪽에 올해 이후 전국에 흩어져있는 변전소 및 공사 사무소 등 한전이 보유 중인 토지 자산 재평가를 통해 7조원 규모 자본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자산의 장부가격이 올라 생기는 재평가 이익은 회사 순이익에 포함되진 않지만, ‘기타 포괄손익’으로 반영돼 자기자본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현재 한전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의 장부가치는 올해 6월 말 기준 8조6천억원에 이른다. 한전이 자산 재평가를 실시하는 건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정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공기업 재무건전성과 관련해 정부 추가출자를 통한 자본 확충, 공공요금 인상 등은 선을 긋고 있다. 문제는 에너지 공기업들이 짜낸 자구안이 미봉책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한전의 경우 자산 재평가를 통한 이익은 실제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 ‘회계상의 이익’일뿐이다. 재평가 이익과 이에 따른 자기자본 증가로 재무 지표가 개선되긴 하지만, 회사의 자금 운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스공사 역시 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며 비용 부담을 미래로 넘기고 있다. 한 예로 공사 재무제표에 반영한 ‘원료비 미수금(요금 청구권)’은 지난 6월 말 기준 5조1천억원에 이른다. 가스 수입가격 급등 여파로 최근 6개월 사이에만 3조3천억원가량 불어났다. 연료비 미수금은 천연가스 등 원료를 사온 가격에서 가스 판매가격을 뺀 차액을 뜻한다. 공사가 100억원 주고 수입한 가스를 국내에 50억원에 공급하면 미수금 50억원을 반영하는 식이다. 비록 현재 가격엔 반영되지 않았지만, 향후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스 요금 누적 인상분이 5조원을 넘게 된다는 의미다.
기재부는 이번 자구안 이행으로 가스공사 부채비율이 올해 437%에서 2026년 197%로, 한전은 369%에서 282%로 내려갈 것으로 본다. 한전이 제출한 총 14조3천억원 규모 자구안에서 자산 재평가를 통한 자본확충(7조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이른다. 겉으로 부채비율이 개선되지만, 유동성 위기엔 도움이 되지 않는 ‘무늬만 자구안’인 셈이다. 기재부 쪽은 “한전의 자산 재평가 이익이 장부상 이익인 건 맞지만, 회계·경영 전문가 등으로부터 회계 기준상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들었다”고 밝혔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아직 기재부의 승인이 나지 않은 만큼 영구채 발행을 검토하는 상황이며 확정된 건 없다”라고 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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