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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기요금 ‘탈정치화’ 위한 독립된 에너지 규제기관 필요”

등록 2022-08-16 07:00수정 2022-08-16 08:50

제1회 사회적 합의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
‘탄소중립 위한 전력정책’ 토론회 개최

“에너지 규제 거버넌스 개선” 공감대
유승훈 “물가 우선하며 늘 정치 개입”
조홍종 “금통위 준하는 인력·예산 독립”
임원혁 “준칙 확립 노력이 바람직” 신중

원가 기반 ‘요금 정상화’도 한목소리
정연제 “가격신호 상실…탄소중립 역행”
조영준 “합리적 전기소비 유도 한계”
홍혜란 “EU 에너지 절약 노력 배워야”

한전 독점 전력판매시장 개방은 이견
석광훈 “경쟁 없으면 규제개선 실패”
정세은 “선진국 실패한 민영화 우회”
산업부 “판매 개방·민영화 검토 안해”

학계·소비자·환경·재계 모두 한자리
‘사회적 합의’ 위한 정책 대안 제시
조영탁 “이념·진영적 접근 극복해야”
제1회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정책 진단과 개선과제 토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의융합대학장,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조영탁 한밭대 교수, 조홍종 단국대 교수,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1회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정책 진단과 개선과제 토론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의융합대학장,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조영탁 한밭대 교수, 조홍종 단국대 교수,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시대적 과제인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려면 전기요금을 원가(연료가격)에 기반해서 결정하는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데 학계 전문가와 소비자·환경·경제계 등 각계 이해관계자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또 에너지 요금이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정해지려면 독립된 에너지규제위원회 신설 등과 같은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다수를 이뤘다.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판매시장을 개방해 경쟁체제로 전환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시장 개방이 전기요금의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의견과, 자칫 민영화로 이어질 경우 요금 급등과 전력공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엇갈렸다.

<한겨레>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본사 3층 청암홀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정책 진단과 개선과제’를 주제로 ‘제1회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을 열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이 ‘전기요금의 문제점과 상황진단’을 주제로,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의융합대학장이 ‘에너지 규제 거버넌스 개선방향’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종합토론은 조영탁 한밭대 교수(전 전력거래소 이사장)를 좌장으로 해서 조홍종 단국대 교수,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이 함께 했다.

국민의 생활과 국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력요금 정책과, 탄소중립 등 기후위기 대처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소비자·환경·경제계와 학계를 망라해서 여러 전문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전기요금의 정상화와 규제기관 개선에 의견을 같이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전력판매시장 개방을 놓고 이견을 보인 것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윤관석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은 축사에서 “전력공급 정책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토론회가 열린 것을 매우 뜻깊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영탁 한밭대 교수는 “에너지 문제를 이념적·진영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정부와 시장 중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이른바 이분법적 접근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언론에 대해서도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기는 보도는 지양하고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을 계속해서 열 계획이다.

전기요금 정상화 시급하다
정연제 연구팀장은 “국제유가와 가스 등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한전이 역사상 최대 적자를 보였다”며 “한전의 부채와 전력채 발행 급증으로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생존할 수 없을 정도”라고 진단했다. 한전의 영업손실은 올해 상반기 14조원(연결기준)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연간 전체로는 20조~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연료가격 등락과 상관없이 값싼 전기요금이 계속 유지되면서 가격신호 기능을 상실하고 시장원칙을 통해 한정된 재화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전력소비 절감과 탄소중립 실현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필수 투자재원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정 연구팀장은 탈원전으로 인해 한전 적자가 늘었다는 주장에 대해 “진짜 문제는 탈원전이 아니라 에너지전환 정책 자체에 있다”며 “한전 적자를 둘러싼 논쟁만 벌이고 정작 중요한 전기요금 정상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고, 원자력 비중을 높인다고 해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의 방만경영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총괄원가 중에서 한전이 통제할 수 없는 발전비용이 85%”라며 “한전의 효율적인 경영 노력이 필요하지만 적자 급증의 핵심은 전기요금”이라고 지적했다.

조홍종 교수는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59%로 37개 회원국 중 36위이고, 글로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가격 시그널을 회복해서 수요 효율화를 하는 게 최선으로, 유럽은 에너지 가격 급등 이후 전기 사용이 30% 줄었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무조건 싼 전기가 복지라는 과거 패러다임에서 탈피해야 하고, 전기요금이 인상돼야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효율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지금의 에너지 공급 위기는 범위와 규모 면에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의 대처를 보면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모래성을 어떤 모양으로 쌓을 것이냐를 놓고 다투는 것과 유사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전력·가스 수요가 가격신호에 반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도입해서 에너지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조영준 원장은 “전기요금이 복지와 물가관리 수단으로 활용돼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합리적인 전기소비 유도가 불가능하다”며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에너지 수요가 전기에 의존하는 ‘전력화’가 심화하면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전기요금 결정체계 구축과 함께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 유지 등과 같은 에너지 효율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혜란 사무총장은 “유럽연합(EU)은 지난 4월 에너지 절약조처를 발표했는데, 우리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국민의 행동이 변해야 하고 이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며 “원가 상승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에 그칠 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 목표 설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너지 규제 거버넌스 개선
유승훈 학장은 “탄소중립 및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에너지산업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규제위원회의 출범이 불가피하다”며 “에너지요금은 물가관리 논리와 정치 개입이 일상화되어 있어서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탄소중립 시대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 확보, 재생에너지원의 변동성 대응, 에너지 시장 효율성 강화 등을 위해서는 전기뿐만 아니라 가스, 지역난방, 석유 등 에너지 분야 전반을 통합적으로 규제하는 에너지 거버넌스 구축이 긴요하다”는 제안도 했다.

정 연구팀장도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서 연료가격 반영 등 ‘총괄원가 보상원칙’이 준수되지 않는 것은 전기요금 결정 과정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며 “전기요금을 정치적 이슈로 삼거나, 전기요금 인상을 정책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친환경 에너지 전환, 안정적 전력공급 등을 감안한 지속가능한 합리적 규제체제 마련이 절실하다”고 뜻을 같이했다. 조홍종 교수도 “인력과 예산이 독립적인 에너지요금결정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며 “금융통화위원회에 준하는 위원 임명 절차와 의결서 작성, 회의록 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미국의 공공사업위원회(PUC), 영국의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독일의 연방네트워크기구(BNetzA) 등과 같이 에너지 부처와 별도로 의회와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에너지규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조정은 한전이 개정안을 올리면 기획재정부와 산업자원부가 조정한 뒤 전기위원회가 추인한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물가안정에 맞춰지면서, 정부가 2020년 말 도입한 연료비연동제(연료비 변화 추이에 맞춰 전기요금 결정)도 유명무실해져, 전기요금 결정의 ‘탈정치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임원혁 교수는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거버넌스 개편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원가연계형 요금제 적용을 유보할 경우 미수금 보전대책을 의무화하는 등 준칙 확립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또 “에너지규제위원회를 신설할 경우에는 여야와 주무부처 장관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위원을 임명해서 임기를 보장하고, 자격요건에 에너지 관련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세은 교수는 “물가안정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향후에도 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위원회를 독립적 기관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통합적인 에너지규제기관 설립은 전체 에너지정책의 판을 개혁하는 것이어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엇갈린 전력판매시장 개방

유승훈 학장은 “중소규모 고객에 대한 전력 판매는 한전이 혼자 맡고, 대규모 고객에 대한 전력 판매는 한전과 신규 판매회사가 공급하는 현행 판매구조에서 벗어나서, 보다 다양한 판매사업자가 등장해 상호 경쟁함으로써 소비자가 직접 판매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고, 소비자 편익이 증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화력발전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되 규모의 경제성 강화를 위해 현재의 5개 화력발전사를 2~3개로 재편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력산업 구조의 재편 필요성도 제기했다.

조홍종 교수도 “외환위기 이후 발전부문 분할과 전력거래소 설립 등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시작했다가 소매시장 경쟁체제 도입 등과 같은 후속 개혁이 중단됐다”며 “이제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등과 같은 전력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비할 시점이 됐다”고 진단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세계은행이 2018년 15개 개발도상국에 대한 조사 결과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독립적인 전력시장 규제기구는 유명무실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공기업이 전력, 가스 시장을 독점하는 사례는 없고, 우리도 지금부터 질서 있는 시장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에너지요금 안정을 통한 부족한 복지정책 보완, 제조업 지원 등을 목적으로 에너지 공기업과 국가독점 에너지시장에 기반해 설립된 한전과 가스공사 체제는 전력 공급과 수요의 유연성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긴축재정과 감세 정책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날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채와 적자분을 정부 재정으로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극단적인 방식의 자산매각(민영화)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정세은 교수는 “전력판매시장 개방은 외환위기 이후 추진되다가 중단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의 최종 목표였고 결국은 우회 민영화에 해당한다”며 “전력의 외부적 비용, 사회적 비용, 정책적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것인가는 판매시장 개방과 상관없이 국가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반대했다. 한전 노조가 전력판매시장 개방이 전력 민영화로 이어질 경우 앞서 민영화를 시행했던 미국과 영국처럼 요금 폭등과 공급 중단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임원혁 교수도 “화력발전 공기업의 부분 통합과 판매경쟁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 등 긍정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전기요금 정상화와 교차보조 해소가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강경택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정부 차원에서 한전 판매시장 개방이나 민영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전기요금에 원가를 반영하려면 50% 올려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지가 문제인 것처럼 규제체계나 산업구조 변화의 필요성을 검토할 때 이행 가능성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주제발표를 한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 유승훈 한국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 토론좌장인 조영탁 한밭대 교수, 토론자인 조홍종 단국대 교수,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세은 충남대 교수,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 김정효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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