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상소심에서 역사상 첫 ‘중재판정’ 사례가 나왔다.
장승화 무역위원장과 멕시코인 변호사, 중국 칭화대 법대 교수 등 3명의 중재인은 유럽연합과 튀르키예(옛 터키) 사이의 ‘의약품 국내산업화 분쟁’ 상소심 사건에서 유럽연합 쪽의 손을 들어주는 중재판정을 내렸다고 무역위원회가 25일 전했다.
이번 판정은 유럽연합과 튀르키예가 지난 3월 세계무역기구 역사상 처음으로 ‘분쟁해결규칙 및 절차에 관한 양해’(DSU) 25조에 따른 중재 조항을 활용해 상소심 중재절차에 합의 회부한 데 따라 이뤄졌다. 앞서 튀르키예 정부는 외국산 약품 수입 허가 조건으로 국내에 해당 약품 제조 공장 설립을 강제했고, 유럽연합은 이를 보호무역조치라며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
상소심 판정은 1심 격인 패널 판정에 뒤이어 나온 것으로, 최종심에 해당한다. 패널 판정 결과는 비공개 상태다.
세계무역기구 상소심 중재판정은 ‘상소 기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일종의 보완 장치 격이다. 정원 7명의 세계무역기구 상소 기구는 회원국 만장일치로 구성하게 돼 있는데, 2020년부터 전원 공석 상태로 사실상 마비 상황이다. 다자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의 퇴조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무역위원회는 “이번 판정문은 분쟁 당사국 사이에서 상소 기구 결정문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며 “타 회원국이 분쟁 해결에 이 새로운 중재 모델을 얼마나 활용할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장승화 위원장은 “전임 세계무역기구 상소위원으로서 전 세계 회원국들이 주목하는 사건이기에 사명감을 갖고 첫 상소심 중재인의 소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1988∼1991년 판사로 근무한 뒤 1995년부터 국내외 로스쿨에서 무역구제법 강의를 해왔다. 한국인 처음으로 세계무역기구 무역분쟁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 기구 상임 재판관을 역임한 바 있다. 2019년 11월 제14대 무역위원장에 임명돼 3년 임기를 수행 중이다. 무역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기관으로 불공정 무역에 대한 조사·판정을 담당하고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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